그의 신발에 발을 끼워보니 그가 느껴졌다… 단편집 ‘모르는 여인들’ 낸 소설가 신경숙
입력 2011-11-22 17:53
해외 북투어를 마치고 지난 8월 말 귀국한 소설가 신경숙(48)씨가 7편의 단편을 묶은 신작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문학동네)을 냈다. 그에게 지난 8년은 숨 가쁜 나날이었다. ‘리진’ ‘엄마를 부탁해’ 등 세 권의 장편을 선보이는 사이사이에 숨고르기 하듯 발표한 이 단편들엔 작가의 들숨과 날숨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수록작 7편 가운데 ‘세상 끝의 신발’ ‘모르는 여인들’ ‘어두워진 후에’ 등 3편에 ‘신발’이라는 공통된 이미지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세상 끝의 신발’에서 부각된, 아버지의 둘도 없는 친구 낙천이 아저씨의 신발이다. 낙천이 아저씨는 소년병으로 참전한 6·25전쟁 때 소설 속 화자(話者)의 아버지가 신고 있던 뒤축이 닳아버린 신발과 자신의 온전한 신발을 바꿔준 적이 있다.
고향의 장례식장으로 내려가는 동안 화자는 낙천이 아저씨의 딸 순옥 언니가 언젠가 결혼을 앞두고 인사차 들렸을 때 언니를 하루라도 더 붙들고 싶어 언니 부츠를 눈 속에 파묻었던 일을 떠올린다. 다음날 순옥 언니는 어머니의 낡은 털신을 신고 떠나간다. 나중에 눈 녹은 자리에서 발견된 부츠에 자신의 발을 몰래 넣어보던 화자는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 장례식장에서 재회한 순옥 언니가 이번엔 자신의 신발을 몰래 감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눈 위에 순옥 언니의 발자국이 대문 바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가만가만 발자국을 따라가니 순옥 언니 집이었다.”(38쪽)
‘모르는 여인들’에도 역시 20여 년 만에 불쑥 나타난 옛 애인으로부터 “너, 그때 왜 내게 그랬어?”라는 질문을 받는 여자가 등장한다. 옛 애인이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아득한 세월의 저편에서 둘은 백화점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를 먼저 발견하고 다가가려다 외면하듯 도망치고 만다. “군화를 보자 내 발걸음이 멈춰졌다. 고함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군화 속에 땀에 젖어 있을 발가락을 연상하자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252쪽)
하지만 여자는 옛 애인과의 만남을 통해 군화의 억눌림으로부터 풀려나게 되고,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남편의 병실로 돌아와 발을 닦아주게 된다.
‘어두워진 후에’에는 가족이 연쇄살인을 당한 충격으로 세상을 떠도는 남자와 그 남자의 누추함 앞에서 지극한 환대를 베푸는 여자가 등장한다. 여자의 따스한 마음과 정성에 감동한 남자는 마침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고개를 떨구던 남자는 자신의 신발이 이제는 걷기가 불편할 만큼 해져 있는 걸 발견했다. 남자는 그 집이 있는 도시로 돌아가면 맨 먼저 새 신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149쪽)
이들 작품을 관통하는 신발이라는 이미지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타인의 신발에 우리 자신의 발을 끼워보거나 겹쳐보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화음이 아닐까. 신경숙은 “내가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은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채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며 “나의 문장들도 사실은 나 혼자 쓴 게 아니라 나와 연결되어 있는 동시대인들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신씨는 29일 오후 7시30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컨벤션홀에서 낭독행사를 갖는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