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비준안 통과] “예산안 처리때 하겠지” 예측하고 있다… 허찔린 野 ‘망연자실’

입력 2011-11-22 22:20

한나라당이 22일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하자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야당은 분노를 표출하는 동시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24일 또는 다음 달 초 내년도 예산안과 동시에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을 했다가 허를 찔린 셈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총회가 오후 2시에 예정돼 있었고, 의총 직전에 본회의장 맞은편 예결위 회의장으로 장소가 바뀌는 등 이상 징후가 있었음에도 전혀 대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날치기를 방조했다”는 비판에 시달릴 전망이다.

손학규 대표는 오후 3시10분쯤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같은 당 강창일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가 기자들로부터 급보를 받았다. 손 대표는 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짧은 축사를 통해 “지금 마음의 평정을 잃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굴욕적으로 당할 수 없다”고 말한 뒤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함께 있던 김영환 우윤근 이용섭 전현희 의원 등 20여명도 그를 따랐다.

김진표 원내대표도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내 대표적 한·미 FTA 찬성파인 김성곤 의원의 저서 ‘평화’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가 본회의장 점거 소식을 들었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강기정 의원은 3시에 예정된 예결위 계수조정 소위가 열리길 기다리던 중 기습 점거사실을 깨닫고 가장 먼저 본회의장으로 뛰어갔다. 강 의원은 “2시50분에 예결위가 연기됐다고 통보가 온 다음 본관 전체가 갑자기 통제됐다”며 “3시9분에 본회의장에 들어갔더니 불도 안 켜진 컴컴한 상황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허탈해했다.

민주당은 3시5분 ‘한나라당 의총 진행 중 상황 발생 가능성 대비해 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소속 의원들에게 발송했고, 3분 뒤에는 ‘지금 즉시 원내대표실로 모여 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으나 이미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부분 본회의장에 들어간 이후였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면회를 갔다가 황급히 본회의장으로 되돌아왔다. 정 최고위원은 본회의장 앞에서 “이건 쿠데타다. 한나라당이 박정희와 이완용의 졸개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소리쳤다. 김유정 원내대변인은 “이런 비공개 날치기는 처음”이라며 “비열한 날치기로 18대 국회를 끝내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오후 4시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에 대한 국회 전원위원회 소집을 한나라당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본회의장 표결이 끝난 뒤 야당 의원들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대책회의를 열었고, 비준동의안 처리 무효를 주장하며 본회의장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민주당과 민노당 지도부는 대책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헌정사상 최악의 날치기 쿠데타”라고 규탄했다. 민노당 이정희 대표는 “막지 못해 참담하다”며 “19대 국회에서 재협상 및 재논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같은 당 우위영 대변인은 “FTA 찬성 의원들은 매국노, 한나라당은 매국노당으로 역사가 기억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엄기영 김원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