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의 교회이야기] 센스 앤 심플리시티(Sense and Simplicity)
입력 2011-11-22 17:29
수정교회 매각을 접하며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세계적 생활용품 회사 필립스의 모토는 ‘센스(Sense) 앤(and) 심플리시티(Simplicity)’다. 필립스는 모든 제작과 공정에서 ‘센스 있고(이해하기 쉽고), 단순하게’라는 이 브랜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다.
필립스의 제품들은 온갖 기능과 버튼이 복잡하게 들어 있는 기존 제품들과는 달리 버튼이 한 개나 두개뿐이다. 사용법이 그림과 숫자로 간명하게 표현되어 있어 글을 모르는 어린이들도 사용할 수 있다. 필립스가 만든 커피메이커와 다리미에는 조작버튼이 하나밖에 없다. 필립스의 제품에는 화려한 기능을 줄이더라도 별 고민 없이 쉽고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국 그것이 고객을 감동시킨다는 센스 앤 심플리시티의 철학이 녹아들어 있다.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 가운데 하나인 CTK(Christ the King Community) 교회의 담임 데이브 브라우닝 목사가 쓴 책이 ‘Deliberate Simplicity’다. 국내에는 ‘작은교회가 아름답다’로 번역됐지만 ‘의도적인 단순함을 추구하라’로 해야 저자의 심중을 더 이해하기 쉽다. 그는 현대 교회는 단순해야 한다고 말한다. 복음의 전달은 물론 운용적 측면에서 복잡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 감동을 줄 수 있는 센스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브라우닝에 따르면 교회는 단순해지기 위해 최소성(minimality)과 의도성(intentionality), 진정성(reality)과 다중성(multility), 신속성(velocity)과 확산성(scalability) 등 6가지 요소를 가져야 한다.
종교사회학자로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인 은준관 박사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미국에서 문을 닫지 않고 꾸준히 존재하며, 성장하는 교회는 거의 모두가 ‘최소한의 운용’(Minimal Operation)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내 메가처치의 원조격인 수정교회가 결국 가톨릭 교회에 팔린다고 한다. 외벽이 1만664장의 유리로 덮인 화려한 수정교회가 일찍부터 ‘센스 앤 심플리시티’를 생각하며 ‘의도적인 단순함’을 추구했다면 오늘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바다 밖 먼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들도 ‘센스 앤 심플리시티’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교회 파산’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이미 적지 않은 교회에 그런 조짐들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암담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역으로 이 땅의 교회들이 단순함과 최소한의 운용이라는 원칙만 지킨다면 의미 있는 생존을 할 수 있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센스 있게 지역의 필요에 응답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레시피가 있는 사역을 펼칠 경우 탄탄한 성장도 할 수 있다.
수정교회의 파산과 매각을 보면서 시대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목회자들은 ‘센스 앤 심플리시티의 시대’에 서 있다. 수정교회의 시대는 갔다!
이태형 종교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