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송주명] TPP와 일본의 태평양 시대

입력 2011-11-22 17:48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이 일본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11월 13일 하와이에서 열린 APEC에서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TPP 협상에 참가하겠다고 천명한 이후 여러 해프닝이 생기고 있다. 미·일 정상회담 결과 발표를 둘러싸고 양국 간에 이견이 생기고, 노다 총리의 발언에 대한 해석도 갖가지다.

사실상 미·일 FTA, 재계 지지

TPP는 작년 말 간 나오토 전 총리가 소위 ‘제2의 개국’을 위한 핵심정책으로 내걸었다. 올해 6월까지 기본방침을 정리하려 했지만 대지진으로 논의가 중단되었다. 원래 TPP 정책은 오키나와 문제로 미·일동맹의 진전이 어려운 상황을 보완하려는 것이었다. TPP에 미국과 일본이 참여하면 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전체의 90%를 넘어서 미·일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진배없어진다. 일본 재계는 동아시아 전체의 경제통합을 바라지만, 지역전체의 통합이 어려운 상황에서 미·일을 중심으로 한 태평양 권역의 통합을 우선하고 있다. TPP로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세계 최대의 경제권이 태평양에 등장한다. 바야흐로 태평양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이 TPP를 재계의 요구를 등에 업고 친미 신보수주의자 노다 총리가 다시 전면에 내걸었다.

민주당 정권 핵심들의 참여 의지에도 불구하고 정국은 복잡하다. 수출대기업의 영향력이 강한 재계는 TPP에 강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반면 농협중앙회(JA) 등 농민단체, 일본의사회와 약사회 등 의료단체, 전노련 등 노동단체, 그리고 생협 및 소비자운동 등 사회세력들은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TPP가 단순한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먹거리, 생활, 의료, 목숨 등 안전한 인간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정치상황도 복잡하다. 공명당, 사민당, 공산당 등 야당들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민주당과 자민당도 반대의사가 많아 당론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농협중앙회의 ‘TPP협상 참가에 반대하는 청원’에 찬동을 표한 여야당 의원은 356명이었는데, 의원총수의 절반 가까운 수다.

중국 견제용 낡은 발상 비판

그러나 TPP는 일본이 태평양 상의 섬나라이며 친미 신자유주의 노선을 지속하는 이상, 피하기 힘든 딜레마이기도 하다. 미국이 TPP에 부여하고 있는 전략적 의미 때문이다. 미국은 경제적 쇠퇴를 극복하기 위해 동아시아와 태평양의 성장에 ‘편승하려’ 하고 있고, 아시아와의 거리를 좁히고자 한다. 동시에 성장하는 중국을 정치경제적으로 포위해 순치하려는 의도도 존재한다. 전후 65년 이상 ‘친미’를 내재화하고, 세기전환기 중국을 견제하는 ‘해양국가’ 전략을 추구해온 일본이 TPP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두 가지 사실을 냉정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대지진 이후 인간 생명논리를 중시하는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있고, TPP는 제조업주의라는 낡은 패러다임의 상징으로 지목될 수 있다. 일본 시민들은 증명되지 않은 TPP의 추상적 경제이득보다는 인간생명, 환경, 삶의 질을 우선하는 새로운 경제 사회의 설계를 절실히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일본정부가 안보적인 이유로 중국을 견제하는 TPP를 선호한다고 할지라도, 재계는 중국시장에 여전히 양면적 태도를 갖고 있다. 최근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일본이 TPP와 별도로 중국을 포함한 ASEAN+6 FTA를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힘의 중심이 이동하는 동아시아에서 포위와 고립화 전략은 위험을 더욱 키운다. 미국의 패권 쇠퇴에 주목하는 일본의 건강한 아시아주의자들의 대안처럼, 동아시아와 태평양을 연계하는 번영과 평화의 포괄적이고 현실적인 지역협력구상이 필요하다.

송주명 한신대 일본지역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