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정비사업… “복지 시장이 강남 부동산 시장 죽일 것” 아우성
입력 2011-11-22 18:22
서울의 재개발·재건축 사업 현장이 혼란스럽다. “강남 부동산 시장은 다 죽었다”는 아우성부터 “박 시장도 말뿐에 그칠 것”이라는 냉소적 반응도 적지 않았다. 박원순(사진) 서울시장이 ‘뉴타운 전면 재검토’, ‘재건축·재개발 속도 조절 및 공공성 강화’를 내걸며 기존 정비사업 방식에 제동을 걸고 나선 데 따른 것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동력을 잃은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정책 변수까지 더해진 셈이다.
◇“강남 부동산 시장은 이제 끝장”=지난 21일 서울 개포동 주공아파트 2단지. 주민 최모(55)씨는 박 시장 이야기를 꺼내자 “‘복지 시장’이 강남권 부동산 시장을 죽일 것이다. 개포동이 이렇게까지 될지는 정말 몰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시는 일주일 전 이곳의 주택재건축정비구역 지정안을 보류했다. 1982년 준공된 주공2단지(1400가구)는 재건축 연한인 22년을 훌쩍 넘겨 재건축 결정 기대감이 높았던 곳이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들은 재건축안 보류 이후 매수 문의 자체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중개업자들은 호가 하락보다 강남 부동산 시장 자체가 더 냉각될 것을 우려했다. A중개업자는 “중개업자들이 굶어 죽을 판”이라며 “강남권 규제를 풀어도 매매가 어려운 판인데 박 시장 때문에 강남 부동산 시장이 바닥을 치는 것을 넘어 지하로 파고 들어가게 생겼다”고 말했다. 22일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박 시장 취임 이후 3주간 강남권 주요 재건축 아파트인 개포동 주공1단지의 매매가격은 1000만∼4000만원, 2단지는 2000만∼3500만원,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는 2000만∼5000만원, 잠실동 주공5단지는 2000만∼3000만원 떨어졌다.
정비사업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박 시장의 계획에도 반발이 거셌다. 주공2단지 인근의 B중개업자는 “재건축 결정이 나더라도 임대아파트 비중을 늘리라고 하면 주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업 폐지 불안감···신규 사업 기대감도=정비사업이 지지부진한 곳은 사업 자체가 폐지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서울시는 내년 20억원을 투입해 조합 설립을 위한 추진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한 뉴타운·재개발 사업을 재검토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은평구 대조1구역 주택재개발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대조동 88∼89번지 일대 11만㎡를 재개발해 지하 3층∼지상 25층의 12∼56평형 아파트 2000여 가구를 짓겠다는 계획 아래 2009년 5월 지구지정이 됐다. 그러나 조합원 간 지분 인정 등을 둘러싼 다툼이 벌어지고 구청의 행정처리 미숙까지 겹쳐 지난 8월 조합 설립인가가 취소되면서 현재 사업이 중단됐다. 전 조합 관계자는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박 시장이 취임해 앞으로 사업이 어떻게 될지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반면 신월동 시영아파트는 재건축 기대감이 일고 있었다. 박 시장이 재보선 유세 당시 비강남권 아파트는 단지별 특성과 상황을 고려해 재건축 연한을 줄일 수 있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2200여 가구의 시영아파트는 준공된 지 23년이 지났다. 현행 규정상 준공 후 34년이 된 2022년 이후부터 재건축이 가능하다.
아파트 인근의 충남공인중개소 백승현 사장은 “전체 가구 수의 40%를 차지하는 투자목적의 소유자들은 재건축 기대심리를 품고 있다”고 말했다. 황제공인중개소 남상언 사장은 “당장 재건축 문의가 있지는 않지만 박 시장의 발언도 있고 해서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주민은 “부동산 시장이 엉망인데 재건축은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전망은 제각각=박 시장이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정비사업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을 것이란 얘기도 많았다. 은평구 대조1구역의 한 조합원은 “박 시장도 수개월만 지나면 타협점을 찾을 것”이라며 “서울시 정비사업 일부는 조정되겠지만 결국 타협점을 찾아 진행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시장이 교체됐다고 정책 자체가 흔들리는 건 비정상”이라고 성토했다. 그러나 뉴타운 반대 주민들로 구성된 전국주거대책연합의 장경태 회장은 “박 시장은 정치인이 아닌 만큼 평소 소신대로 밀어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현 임세정 기자 k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