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 찬반 논란 허송세월 ‘불법 탐방’ 부추긴다… 백두대간 11구간 탐방로 논란
입력 2011-11-23 05:58
등산이 어느새 국민 스포츠가 돼 버렸다. 이에 따라 생태계의 보고인 백두대간 마루금(능선)이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모두 이은 670㎞ 구간 가운데 국립공원 구간은 80㎞다. 이곳은 탐방로가 개설되지 않은 구간, 즉 통행금지구간이지만 ‘종주꾼’들은 오불관언이다.
백두대간 정책을 맡은 환경부는 출입을 통제하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관리를 맡은 산림청은 수수방관한다. 정부는 백두대간 보호구역을 법으로 지정만 해놓고 정작 필요한 보전·복원 노력 및 예산확보는 뒷전이다.
대학교수 이모씨는 지난 6월말 이틀간 지리산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거쳐 백무동으로 내려와 1년여에 걸친 백두대간 종주를 마쳤다. “너무 무거운 배낭을 지고 다녀 허리가 아파 한 동안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어떤 때는 내가 뭐 하러 이 짓을 하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완주하고 나니 성취감이 더 크다.”
◇마루금 종주, 제한해야 하나=이씨처럼 매년 1만여명이 백두대간을 종주한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진 산줄기로 자연환경과 생태계의 근본을 이루는 연결축이다. 또 동과 서의 물줄기를 가르는 분수계로 1정간, 13정맥의 모태이기도 하다. 남한구간인 향로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는 모두 670㎞. 그 가운데 국립공원 구간은 251㎞이다. 설악산 오대산 소백산 월악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 등 7개 국립공원에 걸쳐 있다. 나머지 구간은 산림청 관할이다.
문제는 이 국립공원 마루금(능선) 구간 가운데 80㎞는 탐방로 개설이 되지 않은 구간이라는 점이다. 희귀 야생동식물의 마지막 보금자리 보호 등을 위해 설정한 비법정 탐방로, 즉 등산객 출입금지구간이다. 소백산 덕유산 지리산에는 통제구역이 없지만 설악산 미시령∼마등령 7.5㎞ 구간 등 나머지 4개 공원 11개 구간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산림청은 최근까지도 백두대간 국가등산로 설정 등으로 마루금 종주를 부추기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탐방객은 통행금지 구간을 지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통제구간은 출입금지라는 안내판과 함께 들어가지 못하도록 펜스를 치거나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백두대간 탐방객은 펜스를 뛰어넘거나 주변의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한밤중에 출입금지 구간을 통과하거나 마루금을 샛길로 우회하기도 한다.
◇찬반 격론, 갈등조정 절차 회부=국립공원 구역은 생태적·자연보호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지정한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공단은 보전 목적을 위해 공원구역 가운데 걷기에 위험하거나 생태계가 외부 압력에 취약한 곳의 출입을 통제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공단의 나공주 자원보전처장은 “미개방구간은 통행이 위험하고 경관도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에서 비무장지대(DMZ)와 비슷하다”면서 “접근성도 떨어져 생태계가 가장 건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나 처장은 “그러나 최근 백두대간 마루금 산행이 늘어나 훼손 위험이 크기 때문에 무책임하게 개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산악인을 중심으로 백두대간을 종주하려는 등산객은 “수십년 전부터 원래 다니던 산길인데, 어느 순간 공단에서 통제하고 있다”며 “백두대간 종주가 하나의 산행문화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출입통제는 샛길을 양산하고 산을 파편화해 야생동식물의 서식환경을 더 악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1회당 허용인원 수를 제한하는 방법으로라도 전체 종주로를 열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산림청은 백두대간 마루금에 대한 국가등산로 지정계획을 최근 슬그머니 철회했다. 그렇지만 백두대간 마루금을 동과 서로 우회하면서 백두대간을 잇는 등산로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산림청은 둘레길 조성계획을 밝히면서 “우리나라도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 같은 장거리 도보 트레일이 필요한데 백두대간은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수목원 이병천 임업연구관은 “야생동물이 가장 효율적으로 이동하는 통로인 마루금을 주요 등산로로 허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득과 실을 따져 봐야겠지만 백두대간을 다녀보니 우리나라 산들은 대개 조금만 들어가도 바로 핵심지역에 도달하기 때문에 마루금은 가장 훼손되기 쉬운 길”이라고 말했다.
산악회들로부터 민원이 자주 제기되자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 3월 경실련 산하 갈등해소센터에 백두대간 마루금 종주 찬반을 둘러싼 이해관계자간 갈등분석을 의뢰했다. 이에 따라 환경부, 산림청, 공단, 환경 3개 단체 및 산악 3개 단체가 참석하는 ‘갈등조정위원회’가 구성됐다. 공단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활동에 들어간 갈등조정위는 23일 최종회의를 갖고 다음달 초 결론을 담은 보고서를 낼 계획이다. 공단 관계자는 22일 “딱 부러지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관리의 2원화, 보전과 복원의 부실화=백두대간, 더 나아가 우리나라 산림의 관리가 이원화, 또는 다원화돼 있는데 따른 문제점은 마루금 종주를 둘러싼 혼선에 그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게 생태축의 연결이고, 이를 위해 절개지와 폐도 등 훼손된 지역 복원 및 기후변화 모니터링 등이 필요하지만 실천은 요원하다. 지난 9일 대전에서 열린 ‘백두대간 및 정맥의 관리방안 심포지움’에서 이병천 연구관은 “백두대간과 정맥구간이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동과 서로 생명의 기가 흐르도록 끊임이 없어야 한다”면서 “택지, 도로, 골프·스키장 등 레저시설, 양수발전소 등의 무분별한 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와 다른 심포지움 참석자들은 기후변화 등에 맞서 동식물상을 보전하기위한 모니터링의 중요성을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그러나 백두대간 정책을 맡은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체계적 모니터링을 위한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반면 현장관리를 맡은 산림청은 오히려 연구인력과 예산이 풍부하다. 그러나 산림청은 국립공원 안에서 일회성 조사 이상의 장기적 모니터링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양 기관의 협력이 절실하다.
대전=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