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동자동 쪽방촌 가보니… 이불 두른 채 덜덜 “월동 걱정에 마음까지 시려요”

입력 2011-11-21 18:19


영하의 날씨가 서울의 대표적인 쪽방촌을 기습했다. 정치권에서는 복지 논쟁이 한창이지만 쪽방촌에서는 딴 세상 얘기다. 돈이 없어 연탄·기름보일러도 틀 수 없는 이곳 주민들은 전기장판과 이불 몇 채에 의지해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다.

21일 찾은 서울 영등포 쪽방촌은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서울의 최저기온은 영하 2도. 영등포 고가 아래로 몇몇 노숙인만 모닥불에 모여 손을 녹이고 있었다.

6㎡ 남짓한 방에서 30년 넘게 살았다는 박복례(71·여)씨는 문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에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로 온몸을 꽁꽁 둘렀지만 소용없었다. 연탄보일러는 2년 전에 고장 났다.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는다. 인공연골을 넣은 박씨의 무릎은 겨울마다 아파오고 영양부족으로 휜 손가락은 시리기만 하다. “겨울이 두렵다”며 입을 연 박씨는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해야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겨울을 보낼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몸이 떨린다”고 힘없이 말했다.

쪽방촌의 통장 김영미(41·여)씨는 “추워지면 배수가 잘 안돼 땅이 얼어붙는다”면서 “장애인과 나이 많은 어른들은 아예 집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 한다”고 전했다.

동자동 쪽방촌의 비탈길에도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15년 동안 동자동 쪽방촌에서 산 최영순(68)씨는 지난 1월 꽁꽁 얼어붙은 언덕길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쳤다. 월 31만원인 기초생활수급비에서 방세 18만원을 내고 식료품비, 전기세 등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최씨는 “돈을 벌 수 없으니 연탄 살 돈도 없어 보일러를 틀 수 없다”고 말했다.

5년 전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 이정수(63)씨는 얇은 이불 하나를 몸에 두른 채 혼자 종이컵에 소주를 채우고 있었다. 이씨는 “소주라도 마셔야 덜 춥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 활동가들은 근본적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동자동 쪽방촌을 돕는 ‘동자동사랑방’의 최준 활동가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배고픈 사람이 없는 서울시, 추위에 떨지 않는 서울시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를 위해선 쪽방촌 재개발과 주민 이주대책이 있어야 한다”며 “그것이 힘들다면 최소한 심야전기 사용료라도 내려야 마음 놓고 전기장판을 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등포 쪽방촌을 돕는 광야홈리스센터의 이진호 간사도 “겨울옷 50여벌과 전기장판 70여개를 준비해 나눠주고 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특구로 지정해 공동주거촌을 새로 만들지 않는 한 쪽방촌의 겨울은 시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