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여당의 초라한 14번째 생일잔치

입력 2011-11-21 21:49


현존하는 최장수 정당 한나라당이 21일 창당 14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념식은 조촐하다 못해 썰렁했다. ‘정당’의 존립 자체가 위협당하고 있는 2011년 한국의 정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했다. 무엇보다 의원 169명을 갖고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공룡 집권여당의 위기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필리핀을 국빈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 축사도 단출했다.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대독한 축사에서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은 대한민국 선진화의 큰 포부를 안고 역사의 거센 도전을 헤쳐 왔지만 우리가 처한 환경은 쉽지 않고, 앞에 놓인 과제도 작지 않다”며 “세계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할 일을 다 해나가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 등 차기 대선주자들은 물론, 소속 의원 절반 이상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별도 일정 도중 소감을 묻자 “당의 존재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하면서 기본에 충실하게 최선의 노력을 한번 더 분발해서 할 때라 생각한다”고 했다. 홍준표 대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처리되고 나면 쇄신 연찬회를 열어서 국민 재신임을 받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견을 모으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이렇듯 한나라당은 1997년 창당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당내에선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통과 역풍을 맞았을 때보다 더 끔찍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 이어 올 4·27, 10·26 재보선에서 민심의 매서운 회초리를 맞았지만 되찾을 방법을 못 찾고 있다. 보수정당인 자유선진당, 미래희망연대와의 통합 추진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보수 시민사회 진영에서 “더 이상 한나라당으론 안 되겠다”며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그야말로 보수의 분열이다. 여기에 그간 1위를 내주지 않던 박 전 대표가 갑자기 등장한 ‘안철수 바람’에 흔들리면서 당 안팎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당 핵심 관계자는 “문제는 현 상황을 지도부도, 박 전 대표도, 이 대통령도, 그 누구도 책임지고 돌파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년 총선 전략도, 정권재창출 플랜도 주도적으로 내놓지 못한 채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지도부 리더십뿐만 아니라 제 역할을 못하는 초선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한 당직자는 “과거엔 초선 의원들이 개혁의 출발점이 됐다”면서 “하지만 18대 초선 92명은 무얼 하는지 알 수도 없고, 가만히 있다가 청와대 눈치만 보면서 오히려 당을 후퇴시키는 세력이 됐다”고 꼬집었다.

김나래 유성열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