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피폭 1년 사기충천 연평부대를 가다… “가족 만류도 전우애 못꺾어”
입력 2011-11-21 21:40
지난 15일 오후 2시쯤 인천 옹진군 연평도 해병부대 ○○고지. 바다 건너 12㎞ 밖의 북한 개머리 진지가 보이는 이곳에서 갑자기 “엥∼” 하는 경보가 울렸다. “전투배치, 전투배치”를 외치며 해병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한 항공기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남하하고 있다는 무전 소리가 들리자 벌컨 사수·부사수·탄약수들은 순식간에 자리를 잡았다. 1분이 지났을까. 여기저기에서 “발사준비 완료”라는 구호가 들려왔다. 곧바로 분대장 명령에 따라 100여발의 벌컨포탄이 발사됐다. 적기 출현을 가정한 훈련은 그렇게 10여분 만에 끝났다. 이 부대는 지난해 11월 23일 북한 해안포 포격을 받은 이후 매일 이 같은 훈련을 두 차례 실시하고 있다.
해병대원들 사이에서 한규동(22) 병장 얼굴도 보였다. 한 병장은 지난해 북측 해안포탄 파편에 얼굴 왼쪽을 맞고 쓰러졌다. “미안했고 또 고마웠습니다.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숨진 두 병사와 반격에 나섰던 동료들, 현재 함께하고 있는 전우들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는 게 한 병장의 부대 복귀 이유다.
당시 한 병장은 본부중대 대피호 근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서해 바다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60여발의 K-9 자주포 포탄 발사 훈련이 막 끝난 참이었다. 바로 그때 북한 해안포 포탄이 날아들었다. 옆에 있던 조수원(22) 병장은 왼쪽 다리에 파편을 맞았고 김인철(22) 병장은 조리실 근처에서 배와 오른쪽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이들은 곧바로 의무실로 옮겨졌다.
한 병장 등은 “북한의 2차 해안포 공격으로 의무실 주위에도 포탄이 떨어졌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당시 이들은 일병으로 복무 중이었다. 의무실 안에서는 자신이 부상당했으면서도 “다른 대원을 먼저 돌보라”고 손사래 치는 병사와 의식을 잃어가는 동료의 이름을 외치며 “깨어나라”고 외치는 부상병도 있었다고 한다.
부상당한 병사는 모두 16명. 8명은 전역하고 나머지 8명 가운데 5명이 다시 연평부대로 복귀했다. 한 병장이 복귀 얘기를 꺼냈을 때 부모는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확고부동한 그의 마음은 꺾지 못했다.
이한(22) 병장은 “새로 온 후임병들이 묻지 않으면 그날 일은 서로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병장은 “해병대라서 공격받은 게 아니라 해병대이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이렇게 돌아왔다”며 굳게 입술을 깨물었다.
연평부대는 북한의 포격 도발 이전과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모든 훈련은 마치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긴박하게 진행된다. 병사들의 눈빛은 북한군이 도발하면 즉각 응징하겠다는 각오로 가득하다.
긴장감도 부대 전체를 팽팽하게 감싸고 있다. 당시 해안포 포탄이 떨어진 흔적은 부대 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었다. 포탄을 맞아 부서졌던 부대 이발소와 파편 자국이 선명한 K-9 포진지 등은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리고 있다. 부대 생활관 곳곳에는 ‘절대, 절대 용서할 수가 없다. 철저하게 응징하리라’는 구호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연평부대 관계자는 “치욕을 잊기 위해서 장교와 사병, 하사관이 똘똘 뭉쳐 이곳을 지키고 있다”며 “고슴도치 가시처럼 언제든 북한에 일침을 가할 준비가 돼 있다. 적이 또다시 도발하면 2∼3배로 되갚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