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진홍] “내 치즈는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11-11-21 17:44


스커리와 스니프라는 두 생쥐와 햄과 허라는 두 꼬마인간은 미로(迷路)에서 치즈를 찾아 먹고 산다. 치즈가 쌓여있는 창고를 발견하곤 한동안 배 두드리며 지냈으나 어느 날 치즈가 모두 사라진다. 치즈 재고량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알고 대비하고 있던 두 생쥐는 주저 없이 새 치즈를 구하러 떠난다. 반면 두 꼬마는 치즈가 없어진 현실을 부정하며 좌불안석이다. 그러다 허만 뒤늦게 생쥐 대열에 합류해 새로운 치즈 창고에 도착하고, 햄은 텅 빈 창고에서 과거를 그리워하며 시간을 허비한다. 2000년 베스트셀러였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줄거리다. 스펜서 존슨 박사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평가답게 짧은 우화로 진한 감동을 준다.

책의 주제는 ‘변화’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므로 변화를 예상하고, 신속하게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

변화에 둔감한 한나라당

이 책은 우리나라 정당들에게도 유익할 것 같다. 특히 한나라당이 그렇다. ‘안철수 신드롬’으로 대표되는 ‘비(非)정치’ ‘반(反)정치’ 바람에 한나라당은 휘청이고 있다. 바람의 주역은 정치에 염증을 느낀 2040세대다. 이들의 무기는 ‘1대 9대 90의 법칙’이 적용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온라인 이용자의 1%가 글을 올리면 9%가 댓글을 다는 등 반응하고, 90%는 이를 열람하기 때문에 파급력이 매우 크다.

이런 바람은 지난 4·27 재·보선에서 이미 감지됐다. 경기 성남 분당을(乙)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40대 이하 청장년층이 출퇴근 시간대에 집중 투표한 결과 한나라당은 맥없이 무너졌다. 민주당보다 한나라당을 더 싫어하는 2040세대가 SNS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투표장으로 달려가 민주당 후보를 찍은 것이다.

한나라당은 참패 직후 민심을 반영해 당과 국정을 쇄신하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당대표 자리를 놓고 신·구주류가 싸움질만 했다. 쇄신이나 변화는 말뿐이었다. SNS 대책도 없었다. 그 이면에는 ‘여당 지지층이 다시 나타날 거야’라는 안이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6개월이 흘러 10·26 서울시장 선거에 임했으니, 심하게 말하면 개표하나마나였다. 2040세대가 옛날 그대로인 한나라당에 무슨 매력을 느꼈겠는가.

4·27과 10·26 선거에서 연패한 뒤에야 한나라당은 세상이 정말 달라진 모양이라고 인식해가는 듯하다. 하지만 정신 차리려면 아직 멀었다. 2040세대와 소통해야겠다면서 준비 없이 나섰다가 헛발질을 하지 않나, 2040세대 눈치를 살피느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국가대사 처리도 머뭇대고 있다. 2040세대가 진정 뭘 원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형국이다. 당내에는 알량한 기득권을 유지하려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치즈가 매일매일 줄어드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치즈가 다 없어지자 당황해하며 ‘그 많던 내 치즈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꼬마들과 닮았다.

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책에 이런 글이 나온다. “변화는 우리 기대와 상관없이 예기치 않은 순간에 일어난다. 갑자기 커다란 해일이 밀려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것처럼 변화는 순식간에 우리를 삼켜버릴 수 있다.”

앞으로 다시 5개월 가량 지나면 총선이다. 재·보선과 달리 전국 선거다. 한나라당이 지금처럼 변화에 굼뜨게 대응했다간 다음 총선이 한나라당의 무덤이 될지 모른다. 한나라당은 ‘사라진 치즈’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변화를 두려워 말고, 즐겨야 한다. 바로 이 순간부터.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