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활, 바람, 사랑

입력 2011-11-21 17:54


영화 ‘활’은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을 관통한다. 청의 공격으로 조선은 온갖 치욕과 고통을 당한다. 이제 막 혼례를 마친 한 여인도 포로로 끌려간다. 그런데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뒤쫓아 가는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오라버니 ‘남이’다. 그는 조선 최고의 신궁이다. 그는 여동생을 사이에 두고 청의 별동대장 쥬산타와 목숨을 건 추격전, 혈투를 펼친다. 그러다가 결국은 쥬산타와 일대일로 맞서게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가운데는 사랑하는 누이동생이 있다. 그 누이동생 사이로 서로를 겨냥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바람의 방향마저 남이에게 불리하게 불어왔다.

그때 쥬산타는 그녀가 죽거나 말거나 화살을 쏴 버린다. 결국 누이동생의 겨드랑이를 관통해서 남이의 심장에 박힌다. 그러나 남이는 자칫 여동생이 화살에 맞을지도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실패한다. 그때 그는 자신의 심장에 박힌 화살을 뽑아서 활시위를 잡아당긴다. 바람이 남이에게 더 불리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여동생은 쥬산타에게 잡혀 그의 칼에 위협당하고 있다. 그 상황에서 쥬산타의 목을 뚫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죽을힘을 다해 활시위를 당긴다. 그러자 화살은 곡선으로 바람을 거슬러 동생의 목을 피해 쥬산타의 목을 관통해 버린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오늘도 어리석은 자는 상대의 약점을 인질처럼 삼는다. 자신의 기득권을 안 빼앗기려고 아군이나 형제의 약점을 인질처럼 삼고 공격한다. 아니 지도자까지도 화살을 쏴 버린다. 소문이 나든 말든 공격의 활을 쏴 버린다. 무능한 지도자 역시 자신의 약점이나 인질에 마음이 약해지고 두려움 때문에 체념하고 포기를 해 버린다. 그러나 남이가 다시 심장에 박힌 화살을 뽑아 쏜 것처럼 우리도 두려움을 직시하고 바람을 극복하며 쏴야 한다. 쥬산타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다.

그대는 어떤 활을 갖고 있는가. 그리고 누구를 향해, 어떤 마음으로 쏘고 있는가. 이 시대에 쥬산타 같이 죽이기 위해서만 활을 쏘려고 하는가. 우리는 남이가 되어 사람을 살리기 위해 활을 쏴야 한다. ‘무사 백동수’에서도 검은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지키고 살리기 위해서 써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이 시대는 얼마나 마귀와 죄의 볼모가 되어 신음하고 있는가. 이런 때 우리의 심장에 박힌 화살을 뽑아서라도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겨야 한다. 미움과 증오로 형제를 죽이기 위한 화살이 아니라, 인질로 잡힌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쏴야 한다. 다시 거친 호흡, 뜨거운 심장의 사랑으로 활을 당겨라. 바람을 거슬러, 영적인 쥬산타의 목을 향하여.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하여.

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