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감독, 자본에 휩쓸린 의료시스템 고발하다… 다큐영화 ‘하얀 정글’ 연출 송윤희 감독

입력 2011-11-20 22:13


“시장에 맡겨진 의료제도의 한계 때문에 갈등하는 환자와 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우리나라 의료 현실과 문제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현직 의사이며 다음 달 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을 연출한 송윤희(31) 감독은 20일 영화를 만든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하얀 정글’은 송 감독이 체험하고 목격한 한국 의료 시스템의 비정한 현실과 그 근본 원인 등을 담아낸 현장고발 다큐멘터리다. 2008년 미국에서 개봉돼 큰 관심을 끌었던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 ‘식코’의 한국판인 셈이다.

송 감독은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몇 년 전 안산의료생활협동조합에서 일하는 남편을 통해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고 집에서 칩거하다시피 지내던 당뇨환자를 알게 된 게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얀 정글’이란 제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의사나 간호사들이 하얀 가운을 입고 일하고, 외관도 대부분 하얀색인 병원과 의료 시스템은 겉으로는 평안해 보이지만 내부는 냉혹한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이나 다름없어요.”

영화에는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한 환자들, 고가 병원 광고 뒤에 숨은 진실, 고급 병실이 많은 이유, 값비싼 의료장비의 허실, ‘30초 진료’를 당연시하는 의사들, 실적 경쟁과 직업윤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의료진 등 우리 의료 현장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공공의료 정책 확대에 소홀한 정부에 대한 비판과 의료 소외계층을 확대시키게 될 의료 민영화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담겨 있다.

송 감독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원인을 짚고는 있지만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하고,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고, 의료전달체계의 효율성을 높이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치권이나 정책 당국이 물적 토대를 검토해 차근차근 마련해가야 할 일이죠.”

송 감독은 지난해 9월부터 9개월가량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인터뷰 대상자는 보건의료사회단체의 도움을 받거나 개인적인 친분관계 등을 통해 섭외했는데 병원 관계자들은 거절하기 일쑤였고, 나중에 인터뷰 약속을 번복한 경우도 많아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영화는 인터뷰 중심이지만 재치 있는 그래픽과 자료사진, 풍자적인 내레이션 등으로 보완해 상영시간 82분이 길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송 감독은 “딱딱한 의료문제지만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송 감독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아주대 의대) 때 연극반 활동을 했고, 영화와 글쓰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의대 본과 2학년 때 본격적으로 영화를 경험해 보고 싶어 휴학하고 독립영화 워크숍 과정에서 1년 동안 영화 연출을 배우며 단편 극영화도 몇 편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산업의학과 의사이면서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송 감독은 “쓰고 있는 시나리오가 있다”며 “기회가 된다면 극영화 연출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