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北도발 1년] 전역한 해병 3인 “두려움보다 北에 대한 복수심 앞서”
입력 2011-11-20 21:23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목숨을 걸고 싸웠던 해병들은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다. 군복을 벗고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전사한 전우에 대한 슬픔과 북한군에 대한 분노에 치가 떨린다고 한다.
포격 도발 당시 해병대 연평부대 통신병이었던 전명준(21)씨는 포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밖으로 나가 끊어진 통신선을 복구했던 해병이다. 그가 통신선을 복구해 대응 명령이 하달될 수 있었고 사격도 가능했다.
전씨는 20일 “포탄이 떨어지는 장면을 직접 봤는데 ‘이제 죽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어렸을 때부터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지나가더라”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그러나 두려움은 잠시뿐이었다. 동료들이 피 흘리는 모습을 보고 두려움보다는 증오심이 앞섰다. 그는 “통신선로를 복구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두려움보다는 임무를 꼭 완수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복수심이 두려움을 압도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전씨는 현재 의료보장구학(의족·의수 등 제작)을 공부하는 한서대 학생으로, 휴일에는 음료 도매업을 하는 아버지를 돕는 착실한 아들로 생활하고 있다.
전역을 2주 앞두고 포격 도발을 맞은 정병문(22)씨는 전역을 포기하려 했다. 반드시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한다. 정씨는 “제가 타고 있는 자주포 바로 옆 1m 부근에 포탄이 떨어졌다. 귀가 먹먹해져서 이후 포탄소리가 물속에서 물장구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정신없이 포를 장전해 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정씨는 “모르는 사람은 무덤덤하게 넘길 수 있겠지만 동고동락하던 동료가 피 흘리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포격 도발 당시 전사한 고(故) 서정우 하사의 고향 친구다. 정씨는 “전우의 부모님을 찾아가 보지 못해 너무 죄송하다. 저를 보면 또 자식 생각에 눈물 흘릴까봐 용기를 내지 못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정씨는 현재 조선대에서 제어계측(로봇설비)을 공부하는 대학생이다.
방탄모에 불이 붙은 줄도 모르고 대응사격에 열을 올렸던 임준영(22)씨는 현재 인하공전에서 자동차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북한군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많이 난다”면서 “최전방에 있으면서도 (북한이) 진짜 쏠 줄은 몰랐는데 방심하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했고, 후임들에게도 그런 부분을 많이 강조했다”고 말했다. 불에 타 외피가 벗겨진 그의 방탄모는 현재 해병대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이도경 김미나 기자
이도경 김미나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