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돈가뭄’… 은행은 대출 외면하고 채권 발행도 못해
입력 2011-11-20 18:31
중소기업들의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경기침체가 이어지자 시중은행들은 보증기관의 보증서가 없으면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 한다.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인 채권발행 시장에서도 중소기업은 갈수록 ‘찬밥’ 신세다. 내년에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은 더욱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높다.
◇비 올 때 우산 뺏는 시중은행=책 표지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최근 신제품 개발을 위한 운전자금 2억원을 빌리기 위해 대형 시중은행을 찾아갔지만 거절당했다. 김씨가 이미 공장을 담보로 돈을 빌린 상태라 담보물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대출 연체금액이 없고 매출이나 순이익도 성장세에 있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은행은 이를 평가하지 않고 김씨에게 “보증기관의 보증서를 가져오라”고만 했다.
김씨는 신용보증기금에서 매출액과 신제품 개발 가능성에 대한 평가를 받고 발급받은 보증서를 제출한 뒤에야 겨우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김씨는 20일 “그나마 매출이 호조세에 있어 보증서를 얻을 수 있었다”며 “유럽발 위기로 침체에 빠진 다른 중소기업들은 보증서 받기도 힘들어 은행 대출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최근 경기가 악화되자 대출 자산 건전성을 이유로 담보나 보증기관 보증 없이는 중소기업 대출을 꺼리는 은행들의 관행은 더욱 심화됐다.
실제로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재단 등 주요 3대 보증기관에서 보증한 신규 잔액은 지난 10월 말 현재 16조2296억원에 달한다. 이들 보증기관이 보증하는 범위는 대출액의 85% 정도다. 중소기업들이 보증기관 보증서로 19조936억원가량을 대출받았다는 뜻이다.
이는 공교롭게도 시중은행들이 올해 늘린 중소기업 대출 잔액 19조5311억원과 거의 유사하다. 시중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 1월 433조5306억원에서 지난 10월 말 449조2702억원으로 늘었다. 보증기관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 심사 때 보증기관의 보증서만을 의존하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내년이 더 어렵다=중소기업들은 채권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도 어렵다. 중소기업들이 발행하는 신용등급 ‘BB+ 이하’ 채권이 전체 회사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2.18%, 2009년 2.12%, 2010년 1.52%로 쪼그라들었다. 올해 신규 발행된 ‘BB+ 이하’ 채권 규모도 3404억원에 불과했다.
문제는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세계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내년에 중소기업들의 자금난 악화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자금조달 대부분을 대출에 의존한다. 하지만 국내 경기 침체와 부동산 시장 회복세 둔화로 중소기업들의 자산 평가액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결국 자산 평가액 감소는 중소기업들의 자금 조달액 감소로 직결된다. 중소기업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경우 신용평가도 하향돼 자금조달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중소기업 살리기를 강조하며 21일부터 1박2일 현장 투어에 나선 것도 이 같은 우려에서다. 이번 투어에는 정책금융공사, 신보, 기보 등 주요 정책금융기관장과 5개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담당 부행장도 동승한다. 김 위원장은 내년 1분기까지 중소기업 대출관행 개선 등을 담은 ‘중소기업 금융환경 혁신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