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北도발 1년] ‘말도’의 쌍둥이 해병… “우리 땅 불타는데 공부만 할 수없어…” 美 유학 중 입대
입력 2011-11-20 21:10
서해 연평도 북동쪽 북녘 땅과 6㎞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최전선 말도(唜島). 지도상에도 잘 표시되지 않는 이 작은 섬에 결의에 찬 쌍둥이 해병대원이 불철주야 북한군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다.
지난 8월 해병대 2사단에 입대한 정도현·재현(21) 이병은 칠흑 같은 어둠이 감싼 소초에서 열영상감시장비(TOD)로 북쪽 바다의 이상 징후를 살핀다. 관측조로 꼬박 밤을 새워 동이 틀 무렵이 되면 온몸은 녹초가 되지만 ‘오늘도 조국을 지켰다’는 자부심만은 결코 지치지 않는다.
일란성 쌍둥이 형제의 해병대 입대는 지난해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이 계기가 됐다. 형제는 나란히 민족사관고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형 도현씨는 코넬대 기계공학과, 동생 재현씨는 시카고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두 대학 모두 세계 최고 수재들이 모이는 명문대다.
한창 학업에 열중하던 동생 재현씨는 연평도 포격 상황을 전한 미 TV 뉴스가 끝나자마자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중동전쟁 때 유대인들은 나라를 구하려고 이스라엘로 몰려갔다는데 우리는 이게 뭐야. 지금 대한민국 영토가 불타고 있는데 어찌 공부만 하고 있겠어. 해병대에 입대하자.” 잠시 망설인 형 도현씨는 “피가 거꾸로 솟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온다”는 동생의 말에 “동반입대하자”고 흔쾌히 동의했다.
두 사람은 대학 1학년을 마친 지난 6월 각각 휴학계를 내고 귀국했고, 연평도와 백령도 등 최전방에 배치되길 기원하며 해병대에 자원했다.
면적 1.5㎢에 거주 주민이 10여명에 불과한 말도를 지키는 해병대원은 20여명. 매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지만 대원들은 피를 나눈 형제처럼 똘똘 뭉쳐 있다. 생활 여건이 열악하고 소규모 병영이라 시설이 좋지 않은데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는다.
형 도현씨는 ‘왜 다른 유학생들처럼 방위산업체에 취직해 군복무를 대체할 생각을 안 했느냐’는 질문에 “유학 갈 때 조국이 우리의 든든한 방패가 됐다. 이번엔 우리가 조국의 방패가 돼야겠다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동생 재현씨도 “조국이 어려운데 우리가 솔선수범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얼굴도 똑같고 목소리도 비슷한 두 사람은 같은 초·중·고를 다녔고 유학생활 동안 잠시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같은 부대에 근무하며 전우애를 다지고 있다. 도현씨의 꿈은 로봇공학자이고 재현씨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되고 싶다고 했다.
최현수 군사전문 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