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정인교] ISD, 제대로 알고 떠들자

입력 2011-11-20 17:51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방문으로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처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야당이 주장하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FTA 발효 후 3개월 내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대통령이 약속한다는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당초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갈 것을 예상했던 민주당 측은 적잖이 당황했고, 의총의 형식으로 또다시 대통령의 구두약속보다는 장관급 이상의 서면합의를 받아와야 한다고 말을 바꾸었다.

만약 서면약속을 제시하더라도 야당이 반대입장을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ISD는 야당의 기존 ‘10+2’ 선결조건에서 전략적으로 고른 이슈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ISD에 대한 괴담이 급속도로 인터넷과 SNS를 통해 확산되고 있고,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야당의 전략에 휘말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당은 한·미 FTA 경제성에 확신을 갖고 비준안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 여당 일각에서 아직도 ISD에 대해 미심쩍어하는 것 같은데, 발동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 아무런 배상 없이 외국인 재산이 몰수 혹은 몰수에 준하는 경제적 피해가 발생해야 하고, 외국인투자자에게만 차별적으로 적용되며, 합리적 근거가 없는 무리한 규제나 정책임을 입증해야 성립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미 FTA에는 공중보건, 안전, 환경과 같은 공공정책, 금융위기 시 외화유출입 규제 등에 대해서는 ISD가 적용되지 않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등에서 국가 배상 사례가 많았던 것은 외국인투자를 받기 위해 무리한 약속을 했다가 경제사정이 나빠지자 일방적으로 계약을 취소하거나 영업권을 박탈하였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도 가만있지 않을 사안을 외국기업에게 했으니 정부가 소송을 당하는 것은 불가피하였다. 야당이 주장하듯 ISD는 ‘독소’가 아니라 이런 황당한 일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 ‘약’이다.

ISD로 제소될 정도의 무리한 규제라면 한·미 FTA가 아니더라도 우리 정부는 배상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또 미국은 한·미 FTA상의 ISD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가 기이행한 81개의 투자협정(BIT)과 6개의 FTA를 활용하여 자국의 투자를 보호할 수 있다. 이들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 얼마든지 이 법인이 우리나라가 현지 국가와 체결한 ISD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미국과 ISD 폐기나 수정을 협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공짜점심’이 없듯이 국제협상에 공짜는 없다. 한국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안을 그냥 내주지 않을 것이고, 우리나라는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면 야당은 ‘내준’ 협상을 했다고 비난하며 FTA 반대 촛불을 들고 나설 것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수출시장이 위축된 현 상황에서 한·미 FTA 조기이행의 필요성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일본 노다 정부가 자국 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환태평양무역협정(TPP) 참여를 결정하게 된 것은 바로 TPP를 통해 미국과의 FTA를 이룰 수 있고, 한·미 FTA 이행이 가시화되면 일본이 FTA 경제영토 확대에 한국보다 뒤처질 거라는 FTA 지지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미 FTA의 파급영향이 별것 아니거나 반대론자들의 주장처럼 우리 경제를 망칠 것이라면 일본 정부가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겠는가?

어떤 정책이든 소통이 필요하고 반대 목소리도 경청해야 한다. 하지만, 건강한 토론을 위한, 올바른 정책을 세우기 위한 취지와는 거리가 한참 먼 주장과 괴담으로 인해 하루가 시급한 사안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