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이나 도구를 신체 일부로 인식하는 까닭은

입력 2011-11-18 17:56


샌드라 블레이크슬리, 매슈 블레이크슬리 / 이다미디어 / 뇌 속의 신체지도

자동세차기 앞에서 무심코 머리를 숙이거나, 고가도로 밑에서 몸을 움찔해본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다. 차는 내 몸이 아니다. 고개를 숙인다고 충돌을 피할 수는 없다. 뇌는 왜 엉뚱한 명령을 내린 걸까. 뇌 속 지도에서 차가 몸의 일부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차를 몰아보면, 타이어를 통해 노면 상태가 선명하게 감지되는 순간이 있다. 몸 감각이 차량 타이어로 확대된 것이다. 운전할 때만이 아니다. 모자 끝을 상상할 때, 젓가락으로 반찬을 짚을 때, 야구방망이를 휘두를 때 뇌가 인지하는 몸은 도구를 포함해 일시적으로 넓어진다. 이런 확장은 뇌와 몸의 협업에 대한 중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미국의 과학 저술가 샌드라와 매슈 블레이크슬리 모자(母子)가 함께 쓴 ‘뇌 속의 신체지도’는 뇌와 몸을 잇는 핵심 연결고리인 ‘신체지도(body map)’를 탐색한다. 신체지도는 손발, 다리, 입술, 혀, 위, 소장 등 신체 각 부위와 몸 주위 공간이 뇌 속 부호로 저장된 일종의 설계도면. 손발은 뇌의 A구역이, 혀는 B구역이 관장하는 식으로 담당구역이 정해진 뇌 속 몸 지도라고도 할 수 있다.

뇌의 신체지도는 실제 몸 비율과 극적으로 다르다. 예를 들어 신체지도상으로 입술은 엉덩이보다 훨씬 크다. 이유는 엉덩이는 감각이 무디고, 입술은 감각수용기가 밀집한 민감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입술을 담당하는 뇌는 넓고, 엉덩이 담당 뇌는 작다는 뜻. 그래서 뇌 속 신체지도를 3차원으로 구현한 조각상(사진)을 보면 손과 입술은 거대하고 몸통은 비쩍 말랐다.

흥미로운 사실. 영화 ‘미녀는 괴로워’ 속 주인공이 살 빼고도 뚱보처럼 행동하는 이유는? 신체지도 속에 비밀이 있다. 예전의 뚱뚱했던 신체지도가 날씬한 현재의 몸 지도로 업데이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뇌가 몸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생긴 뇌와 몸의 불일치인 셈이다.

이런 엇박자가 드물진 않지만, 정작 주목할 대목은 뇌와 몸이 신체지도라는 ‘고리’ 없인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틈만 비집고 들어가면 가짜 몸을 움직이는 게 가능해진다. 가상현실의 ‘아바타’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아바타의 가짜 신체지도를 활용해 몸의 지각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가상현실은 게임과 교육, 의료까지 미래의 각광 분야가 될 것 같다’는 게 뇌 과학의 전망이다. 정병선 옮김.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