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농 ‘구제역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입력 2011-11-17 21:09
“소가 침만 조금 흘려도 혹시 구제역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철렁합니다. 전후 사정 가릴 겨를도 없이 일단 신고부터 하고 봅니다.”
지난해 11월 구제역이 발생했던 경북 안동시 서후면 대두서리 축산농 김모(51)씨는 최근 자신의 한우농장에서 소 2마리가 침 흘리는 것을 발견한 순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평소와는 달리 입가에 침을 흘리며 사료도 잘 먹지 않는 것 같았고, 다리도 마비증상을 보이는 것 같았다. ‘구제역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곧바로 안동시청 축산진흥과로 신고부터했다. 즉각 방역당국은 즉각 현장에 출동, 시료를 채취하고 검사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다음날 음성으로 판정받은 뒤 한숨을 돌렸지만 아직까지 가슴이 진정되지 않은 상태다.
김씨처럼 축산농민들 상당수가 ‘구제역 트라우마’(Trauma·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4월 경북 영천에서 마지막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구제역에 대한 의심신고가 최근 잇따르면서 17일 현재 전국에서 접수된 15건의 신고 중 12건이 경북지역이었다. 다행히 모두 음성판정을 받았다.
안동시 축산진흥과 관계자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보면 대부분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호전되는 등 구제역 증상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며 “일단 의심신고가 접수되면 아닐 가능성이 많아도 반드시 검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북도 축산경영과 관계자는 “지난해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엄청난 피해를 몰고 온 아픈 상처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약간의 구제역 의심증상만 감지돼도 바로 신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잇따른 구제역 의심신고는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최근 바뀐 ‘가축전염병 예방법’도 농민들의 구제역 의심신고 급증에 한몫하고 있다. 예방법은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의 가축을 살 처분할 경우 현 거래가의 80%를 정부가 보상해 주지만 농장주가 구제역 의심신고를 하지 않았을 경우 20%, 백신접종을 하지 않았을 경우 20%, 구제역이 발생했을 경우 20%를 삭감한다고 규정했다.
김상철 경북도 축산경영과장은 “의심신고가 계속되는 것은 농민들의 경각심이 높아졌다는 증거이자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라며 “공무원들도 구제역 발생만은 기필코 막아 내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