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난상토론 7시간…강경파, 협상파 목소리 덮어버렸다

입력 2011-11-18 00:35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국회 처리 방식을 논의한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강경파 목소리가 협상파를 덮어버렸다. 의원총회는 17일 오후 2시에 시작해 늦은 밤까지 7시간 넘게 이어졌다. 169명의 당 소속 의원 중 148명이 참석했고, 104명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으며, 66명이 발언대에 섰다. 강경론이 온건론보다 4배쯤 더 많았다고 원내 관계자가 전했다. 거대 여당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한 분위기였다.

당론이 결정되기까지=오후 6시30분쯤까지 공개된 발언들은 ‘강경’과 ‘협상’으로 뚜렷하게 구분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의견이 수렴되기 시작했고, 결국 당론이 발표될 수 있었다.

당초 ‘조속히 표결처리’로 잠정 결정됐던 당론은 ‘조속히 처리’로 완화됐다. 야당과의 협상문을 열어둬야 하는데 ‘표결처리’가 ‘강행처리’로 인식될 수 있다는 협상파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다만 협상파 대부분은 의총 후반부에 “당론이 정해지면 따르겠다. 본회의 표결에도 동참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강행처리 못하겠으면 당직 내놓아야”=홍준표 대표는 의총 모두발언에서 “당단부단 반수기란(當斷不斷 反受其亂)이란 고사가 있다. 결단을 내릴 때 주저하면 대혼란이 초래된다는 뜻”이라며 “이제 국회법과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비준동의안 처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대표는 “오늘 저녁 약속이 있는 분은 전부 파기하고 169명이 다 모여 결집된 힘으로 이 난국을 돌파해야 한다. 밤을 새서라도 의원 전원이 토론에 임해 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저녁약속 파기’를 세 차례나 외쳤다. 앞서 홍 대표는 서울 지역 초선 의원들과 여의도에서 오찬을 함께하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거의 매일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와 만나며 타협의 희망을 놓지 않던 황우여 원내대표도 한층 강경해진 모습이었다. 그는 의총에서 “조선시대 쇄국정책을 하다가 대륙을 호령하던 한민족의 기상은 사라지고 위축을 거듭하다 국권까지 빼앗긴 역사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준동의안을 ‘을사늑약’에 빗댄 민주당 강경파를 쇄국론자로 몰아붙인 것이다.

이어진 자유발언에서 일부 강경파는 황 원내대표의 사퇴까지 거론하며 대야(對野) 협상을 주도하는 원내 지도부를 압박했다. 심재철 의원은 “황 원내대표와 남경필 위원장이 몸싸움을 안 하겠다는 약속 때문에 일을 안 하려는 것 같은데 그 약속에서 빠져나오든지, 그것 때문에 할 일을 못한다면 자리를 내놓든지 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윤상현 의원은 “우리는 할 만큼 했다”며 “황 원내대표가 진두지휘했는데 갈수록 당의 동력이 떨어지니 이제부터는 당 대표가 직접 진두지휘해 책임 처리를 했으면 좋겠다”고 가세했다. 온건 입장이었던 현기환 의원조차 “(야당과) 더 대화를 해야 하지만 대신 시한을 정해야 한다. 그러고도 안 되면 원내대표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고, 김성식 의원도 “원내대표가 직을 걸고 협상하겠다고 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코너에 몰린 협상파=강경파가 의원총회를 주도했지만 협상파의 목소리가 아주 사라진 건 아니다. 협상파 김세연 의원은 의총에서 “조급한 마음을 거두지 못해 뚜껑을 열면 다 된 밥을 설익게 만든다”며 “한·미 FTA라는 국익과 의회주의 수호라는 국익을 함께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반박했다. 남경필 의원은 “본회의 처리를 강행할 경우 표결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여야 합의 처리를 촉구하며 의원회관 로비에서 5일째 단식 중인 정태근 의원도 의총장에 나와 “좀 더 기다리자”고 호소했다. 홍정욱 의원은 앞서 이날 오전 의원회관에서 ‘여야 협상파 6인 협의체’ 회동을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나 “표결 처리 전까지는 합의를 위한 노력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합의 처리’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여야의 ‘강대강’ 기류를 되돌릴 뾰족한 묘수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협상파 내부에서도 여야 간 이견이 표출됐다. 이날 회동에서 한나라당 협상파 의원들은 “민주당이 ISD 재협상에 대한 한·미 양국 장관급 이상 서면합의를 받아오라고 한 것은 무례한 요구” “서면합의를 한다 해도 민주당 입장이 또 바뀔 것”이라고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민주당 김성곤 의원 등은 “서면합의를 하면 비준 과정에서 몸싸움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당론으로 정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도 이날 모임을 갖고 ‘국회 바로세우기 모임’ 명의로 민주당 지도부에 서신을 전달하기로 했다. 민본21 간사인 김세연 의원은 “당파적 이익을 떠나 나라의 장래를 위해 양식을 회복해 달라는 점을 요청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협상파들은 “20일 민주당과 혁신과통합 연석회의가 분기점이 돼 민주당 입장이 변할 수 있다”며 여전히 여야 합의 도출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한편 여권의 ‘잠룡’으로 꼽히는 정몽준 전 대표는 의총이 마무리될 무렵 회의장을 찾아 마지막인 66번째로 발언을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와 이재오 의원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