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의 원류는 1920년대 실천 신앙”… 이정배 감신대 교수 ‘한국철학사전’서 주장

입력 2011-11-17 19:03


감신대 이정배(조직신학) 교수는 한국 기독교의 미래는 과거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중에서도 1920년대의 기독교가 한국 기독교의 원류(源流)라고 본다. 따라서 한국 교회의 대안은 그 당시의 기독교 사상과 인물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1920년대 당시 이용도 길선주 목사, 함석헌 선생 등은 기독교와 민족주의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으로 봤습니다. 비록 수적으로 소수였지만 기독교가 민족의 주류 종교가 될 수 있었던 데는 바로 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20∼30년대 당시 한국 교회는 묘하게도 지금의 한국 교회와 비슷하다. 신앙의 내면화, 교파주의, 교회의 세속화가 만연했다는 것이다. 당시 한 신문 사설이 ‘거리의 종교’가 되라고 한국 교회에 촉구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교수가 최근 몇몇 타종교 학자들과 함께 펴낸 ‘한국철학사전’에서는 ‘뜻의 존재론’ ‘영적 기독교’ ‘없이 계신 하나님’ ‘한(恨)의 신학’ 등 알 듯 모를 듯한 기독교 개념들이 등장한다. 일제 치하라는 냉혹한 현실을 복음으로 해석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그들의 몸부림에서 나온 이른바 ‘순 국산’ 기독교 사상들이다.

여기엔 다소 정치·사회적으로 진보적인 사상도 내포돼 있다. 함석헌 선생이 주창한 ‘뜻의 존재론’이나 서남동 선생의 ‘한의 신학’의 경우 외세 내지는 지배체제에 대한 항거의 의미로 주체적 종교나 민중적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함 선생의 경우는 ‘기독교나 성경이 유일한 진리가 아니다’는 인식을 하게 됐고, 서 선생의 경우는 민중의 편에 치우치다 보니 늘 권력의 탄압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 주류와도 늘 불편한 관계였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기꺼이 그 ‘탄압’이나 ‘불편’마저도 감수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지켜나갔다.

이용도 목사의 ‘영적 기독교’ 역시 말보다는 침묵, 교리보다는 사랑의 행위를 중시하고 있다. 성령의 체험,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신과 일치시키는 신비주의가 그의 주장의 핵심이었다. 여기서 진정한 교회 개혁, 민족 독립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33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는 교권화한 조선 기독교에 대한 항거, 진정한 민족 독립을 위한 헌신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이들에 대해 “교리나 말뿐이 아니라 삶으로 자신의 사상을 실천했던 분들”이라며 “요즘처럼 한류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상황에서 세계에 내놓을 만한 사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시의 몸부림, 당시의 주장이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그만큼 지금의 한국 교회 상황이 당시 상황과 닮아 있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2013년 WCC 부산총회,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 2019년 3·1운동 100주년. 앞으로 몇 년간 한국 교회가 맞아야 할 중요한 행사와 기념일들이다. 이 교수는 “앞으로 10년이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주신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를 이끌어갈 생태, 복지의 가치관을 복음으로 끌어안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국 교회는 종교개혁의 대상이 된 구교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