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가을여행

입력 2011-11-17 17:58

경북 청송의 한적한 산골에 있는 주산지는 사진작가나 사진을 취미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명소다. 가을에 이곳을 찾는 것은 축복에 가깝다. 물에 비친 색색의 단풍잎과 절반이 물에 잠긴 왕버들은 혼자 보기에 아까운 작품이다.

일전에 시간을 내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마침 해가 막 뜰 때여서 물 위에 피어나는 안개와 왕버들이 햇살에 어울려 볼만했다.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이 장면을 담고 있던 작가들의 표정이 하도 진지해 같이 간 지인과 큰 소리로 말 한 마디도 나누지 못했다.

주산지 바로 옆동네가 고향인 후배에게 “넌 정말 좋은 곳을 고향으로 가졌다”는 문자를 보냈더니 “뭐 그래봤자 촌구석에 있는 못인데…”라는 답이 돌아왔다. 명소를 고향으로 둔 은근한 자부심이리라. 돌아오는 길에 마시면 미인이 된다는 달기약수터에 들러 맛본 백숙도 일품이었다.

달기약수는 철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엿과 함께 먹어야 한다. 경북 지방에서는 워낙 소문이 난 곳이라 평일이고 주말이고 관광버스로 북적인다. 달기는 중국 은나라 주왕의 비로 왕의 총애를 믿고 포악하게 행동하다 무왕에게 살해됐으며 상당한 미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행은 일상에서 잠시 떨어져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좋은 날에 떠나는 가을여행은 더 말할 나위없다. 자연이 겨울을 준비하듯 우리도 이 여행에서 남은 앞날을 준비할 수 있다. 아침저녁 귓가를 스치는 찬바람을 맞으며 상념에 잠기는 것은 더할 수 없는 낭만이다.

요즘은 해외여행 정보도 홍수처럼 넘쳐 마음만 먹으면 외국으로 떠나기도 쉽다.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도 마니아들끼리 만든 카페에 가입하면 쉽게 세계 어디에라도 다녀올 수 있다. 뉴스위크 최신판은 이탈리아 중부의 토스카나주와 프랑스 파리, 러시아 모스크바를 가을여행지로 추천하며 이 지역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거장들의 명화를 볼 수 있어 여행지로 제격이라는 것이다.

사실 여행이란 아무 때나 아무 생각 없이 떠나도 좋은 것이긴 하지만 겨울은 너무 춥고 봄은 너무 들뜨기 쉬워 가을이 제격일 것 같다. 이제 좋은 계절 가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벌써 단풍이 낙엽이 돼 길바닥에 떨어지고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좋은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거기에서 잠시 잊고 살았던 삶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으면 더 좋은 일 아니겠는가.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