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굴리는’ 손 실수란 없다… 서울메트로 군자차량기지와 ‘정비의 달인’ 김정수 검수과장

입력 2011-11-17 18:08


14일 서울 용답동 서울메트로 군자차량사업소. 아침 기온이 영상 4도까지 떨어지면서 바람까지 불어 겨울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날씨였다.

추위가 다가오면 남달리 신경이 곤두서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1000만 서울시민의 출퇴근길을 책임지는 지하철을 정비하는 사람들이다. 자동차 운전자라면 알겠지만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부동액도 점검하고 여기저기 기계에 이상이 없는지 신경써야 할 게 많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날씨가 추워지면 기계에 문제가 발생하는 빈도가 높아진다. 자칫 출근길에 문제라도 생기면 시민들로부터 ‘바가지’로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실제로 올 1월 18일 한파로 전기장치가 고장 나 지하철 2호선 운행이 50분가량 중단된 적이 있다. 출근길 대란이 벌어져 서울메트로가 성토의 대상이 된 것은 물론이다.

보안시설로 일반인의 접근이 힘든 군자차량기지를 찾아 전동차 정비 모습을 살펴봤다. 이 자리에는 지난 8월 서울메트로로부터 ‘전동차 정비의 달인’으로 선정된 김정수(51) 검수과장이 동행했다.

100억짜리 차량 주무르는 사람들

오전 9시가 지나면서 군자차량기지로 2호선 및 1호선 전동차가 하나둘씩 복귀했다. 아침 5시30분부터 운행을 시작한 지하철은 출근시간이 마무리되는 9시 전후로 배차간격이 길어지면서 점검을 위해 기지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이들이 모습을 나타내면 정비사의 움직임도 바빠진다.

지하철 1∼4호선을 관할하는 서울메트로는 이곳을 포함해 지축과 신정, 수서, 창동 등 모두 5곳에 차량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군자차량기지는 1974년 설립 이래 줄곧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어 우리나라 전동차 정비의 살아 있는 역사나 다름없는 곳이다.

군자차량기지가 관할하는 전동차는 지하철 1호선의 경우 16대 편성 160량, 지하철 2호선은 지선 5대 편성 20량과 순환선 35대 편성 350량 등 모두 530량이다. 편성이라는 표현은 전동차 한 대가 몇 개의 차량으로 구성됐는가를 나타낸다. 1대 편성은 대개 차량 10량으로 이뤄진다(다만 승객 수요가 적은 2호선 성수∼신설동 지선 구간은 4량으로 편성돼 있다). 전동차 1대를 10량으로 편성하는 나라는 지하철을 운용하는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다. 파리나 모스크바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는 대부분 6량이나 8량으로 구성한다.

정비창에 전동차가 들어오자 6인 1개조로 구성된 정비사들이 각자 맡은 위치로 이동했다. 우선 해야 할 것은 ‘전동차 기절시키기’. 직류 1500V가 흐르는 집전장치를 내려 전기를 차단하는 것이다. 무게 325t에 달하는 거대한 전동차가 얌전해졌다. 그 사이 정비사 2명이 잽싸게 집전, 냉방, 환기장치 등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전동차 1량의 길이가 20m이니까 총 200m 구간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또 다른 정비사 2명은 손전등을 들고 철길과 맞닿은 바퀴와 동력장치 등을 확인했다. 하얀색 목장갑은 금세 새까맣게 변했다. 동행했던 김 과장이 직원에게 물었다.

“제동장치 24V로 나와?”

“예, 별다른 이상 없는 것 같습니다.”

전동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제동장치다. 전동차의 바퀴가 헛돌거나 적게 도는 것을 막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테스터 기계를 사용해 100V 전압을 주면 24V가 나와야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것이다. 공기압축기 소리와 각종 공구 소리 때문에 옆 사람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정비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는 사람입니다. 한번 실수했다가는 시민으로부터 욕을 엄청나게 먹어요. 저희 선배 중에는 정비 잘못했다가 승객에게 뺨 맞은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 과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차량 위아래 점검이 마무리되면 이번에는 승객들이 직접 탑승하는 공간을 탐색한다. 이 단계에서는 차단했던 전기를 다시 살려 출입문 동작 이상 유무와 운전실을 살펴본다.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기까지 대략 40분이 걸렸다.

이런 검사가 매일 이뤄진다. 기지를 출발하거나 도착할 때 하는 것은 기본이고, 사흘 간격으로 2시간30분이 소요되는 일상검사를 한다. 2∼3개월마다 좀 더 자세하게 보는 월상검사도 빼놓을 수 없다. 그 밖에 월 1회 대청소와 5일마다의 중청소, 매일 하는 소청소 등 갖가지 작업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차량 1량 가격이 10억2000만원이거든요. 지하철 편성 1대가 대략 102억원이에요. 그러니 고장 나지 않도록 매일 아끼고 꼼꼼하게 살펴보는 건 당연하죠.” 김 과장의 목소리에는 강한 책임감이 묻어났다.

김 과장처럼 경정비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이 기지에만 380명이다. 이들은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하는 평상조와 저녁 6시부터 그 다음날 오전 6시까지 근무하는 야근조, 야근 후 휴무하는 휴무조 등 3개조로 구성된다.

정비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어진다. 4시부터는 다시 기지에서 점검을 마친 14대의 전동차가 하나둘씩 퇴근시간에 맞춰 출동한다. 오후 6시5분에는 28대 전부가 퇴근길 교통편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퇴근시간대의 정점을 지나는 오후 8시, 9시 등 시간대별로 노선에서 기지로 복귀하는 전동차를 상대로 정비가 진행되고, 운행이 모두 중단되는 새벽 1시30분 이후까지도 계속된다.

이 같은 경정비와 별도로 180명의 정비사는 중정비 분야에서 일한다. 이들은 2∼3년 주기로 주행장치 등 주요 부품을 분해해 점검하는 작업을 한다. 또 4∼6년 주기로 영구 결속 부위를 제외한 4만5000여개의 모든 부품을 분해해 교환 및 수선을 한다.

정비하다 지갑 주워 결혼하기도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지하철은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지하철 1∼4호선을 이용한 승객은 무려 14억7500만명. 하루 평균 404만2000명이 지하철을 이용했다는 얘기다. 그중에서도 군자차량기지가 정비를 담당하고 있는 2호선의 경우 무려 200만5000명의 시민이 이용했다.

대중교통으로서의 비중이 커지는 만큼 지하철 안전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높다. 특히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으로 무려 198명의 승객이 목숨을 잃은 뒤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조금만 연기가 나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군자차량기지의 주력 정비 대상은 승객밀집도가 높은 2호선 전동차다. 이 중에서도 20년 이상 된 노후 차량이 42량이나 있어 늘 정비에 신경을 쓴다.

보통 전동차 1량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 무게는 64t 정도다. 전동차 자체 무게 44t을 제외하고 대략 20t을 승객 무게로 치면 1량 당 350명이 최대 수용 인원이다. 하지만 2호선 신도림∼강남∼잠실로 이어지는 구간은 아침 출근길에 1량 당 많게는 500명 가까이 타는 일이 다반사다. 바퀴를 지탱하는 차축에 무리가 갈 수도 있다. 한번은 전동차 유리창이 승객들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통째로 떨어져나간 적도 있다.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러기에 정비가 중요하다.

하루 180.9㎞를 주행하는 전동차를 정비하다 보면 이색적인 에피소드도 많이 발생한다. 한 정비사는 출입문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지갑을 주웠다. 혼잡한 전동차에서 소매치기가 승객의 지갑을 훔쳐 현금만 빼낸 뒤 출입문 틈에 버린 것. 마침 신분증을 보니 미모의 아가씨였고 ‘흑심’이 발동한 정비사는 이 아가씨에게 지갑을 돌려주면서 평생 반려자를 찾았다는 것이다. 군자차량기지에만도 이런 인연이 세 커플 정도 된다고 김 과장은 귀띔했다. 최근에는 지갑이 발견되는 경우가 흔치 않다. 많은 현금을 지갑 속에 넣고 다니지 않는 경향 때문인데, 미혼 정비사들이 간혹 아쉬워할 때도 있다.

재미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번은 어떤 승객이 갑자기 전동차로 뛰어들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직원들이 나서서 시신을 수습했지만 신체 일부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육중한 무게의 전동차에 뛰어들어 사고가 발생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지로 복귀한 전동차를 무심코 정비하려던 정비사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못 찾은 신체 일부가 전동차의 추진 장치 위에 놓여 있었던 것. 당시의 충격으로 정비사는 한동안 공황장애에 시달렸다. 정비사들의 말 못할 고통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지하철 역사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면서 이런 사고는 상당히 줄었다.

밤새 복사한 일본어 정비 매뉴얼

지하철 안전이 강조될수록 정비 인력의 중요성은 더 강조된다. 이 때문인지 서울메트로는 지난 8월 김 과장을 정비의 달인으로 선정했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예술의전당, 롯데월드 예술극장 등의 무대장치 및 조명을 제작하는 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31세 때인 1990년 서울메트로에 입사해 21년간 줄곧 차량 정비와 제작 분야에서 일했다.

-차량 정비 분야의 달인으로 선정됐는데.

“창동기지에서 근무하던 시절인 1994년에 도입된 4호선 전동차는 일본의 기술력이 들어간 것이었다. 일본 기술자들도 파견돼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새로운 차량에 대한 정비 기술이 없다 보니 답답했다. 보안의식이 철저한 일본 기술자들은 노하우를 잘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중 친하게 지내던 한 일본 기술자가 나를 살짝 불러 아무 말 없이 눈짓을 했다. 그는 정비 매뉴얼 서류를 사무실 의자에 놔두고 그 위에 방석을 덮어놨다. 나는 모두 퇴근할 때까지 남아 있다가 그 서류를 밤새 복사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었다. 하룻밤에 1000페이지짜리 정비 매뉴얼 3∼4권을 통째로 복사하기도 했다. 그렇게 악바리처럼 해서 정비 기술을 익혔다.”

-대단하시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정리해 둔 정비 노하우가 컴퓨터 파일로 19기가쯤 된다. 나 혼자 보기 아까워 얼마 전 자료를 모두 복사해 본사 정비팀과 다른 차량기지에서 근무하는 후배들에게 나눠줬다. 지하철 부품 중 쓰다 남은 폐 컴퓨터 자재에서 하드디스크 몇 개를 얻어 몇 천원 주고 산 외장하드 케이스를 입힌 것이다.”

-겨울이 다가오면 지하철 사고 위험이 높지 않은가.

“우리는 ‘사고’라는 단어만 들어도 놀란다. 지하철 고장은 주로 11월에서 12월 사이, 그리고 2월에서 4월 사이에 자주 일어난다.”(정비사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사고의 정의는 인명, 재산상의 피해가 5000만원 이상일 때를 말한다. 고장 등의 문제로 인해 10분 이상 전동차가 운행하지 못할 경우는 ‘장애’라고 표현한다).

-정비사 후배들에게 평소 당부하는 게 있다면.

“항상 후배에게 보여주는 사진이 있다. 2009년 1월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 연속 출근시간대에 지하철이 고장 나 2호선 잠실종합운동장역 승강장이 승객들로 꽉 찬 사진이다. 저 승강장에 당신의 가족이 있다고 생각하고 정비를 하라고 당부한다. 지하철 1대가 고장으로 운행하지 못하면 하루에 8900만원 손해를 본다. 회사의 수익을 떠나 항상 봉사한다는 자세로 꼼꼼하게 살펴야 우리 가족이 안심하고 타고 다닌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글=이제훈 기자, 사진=구성찬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