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고정금리 대출’ 증가세 멈칫… 글로벌 저금리 기조에 고객들도 외면
입력 2011-11-16 21:17
지난달 2억7000만원 대출을 받아 서울의 한 아파트를 사기로 결정한 전모(47)씨는 주거래은행에서 두 가지 제안을 받았다. 연 4.8%대의 3년 고정금리 대출과 연 4.4%대의 변동금리 대출. 전씨는 별다른 고민 없이 변동금리 대출을 선택했다. 그는 “은행 직원이 향후 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며 고정금리 대출을 추천했지만 당장 연간 100만원 이상의 이자를 더 낼 필요는 없지 않냐”며 “향후 금리가 높아질 것 같지도 않고, 높아진다 해도 중도상환 수수료가 면제되는 3년 후에 대출 조건을 변경하면 된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고정금리 대출 증가세가 주춤거리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다. 미국의 신용위기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제 불안이 유럽 재정위기로 확산되면서 좀처럼 금리 상승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잇따라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도 이런 흐름에 따른 것이다.
은행들은 고정금리 대출 확대를 강하게 주문하는 금융당국과 고객들 사이에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금융당국이 지난 6월 가계대출 억제 종합대책 중 하나로 ‘현명한’ 고정금리 상품 개발을 주문하며 강경 드라이브를 고수하는 데 반해 고객들은 이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국민은행의 신규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지난달 처음으로 감소했다. 이 은행의 신규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지난 6월 11.2%에서 지난 9월 34.2%까지 증가하다 지난달 31.9%로 내려앉았다. 국민은행은 특히 지난 7월 연 4.83∼5.34% 수준의 저금리 고정금리 대출 특판 상품을 1조원 한도로 내놓았지만 8000억여원의 실적을 올리는 데 그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고정금리 대출은 당장 금리는 조금 높아도 금리 상승기에 변동금리 대출보다 안정적으로 가계 재정을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그러나 저금리 기조가 길어지면서 창구에 앉은 고객들이 변동금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고 말했다.
신한은행도 신규 고정금리 대출 비중이 지난 6월 19.9%에서 7월 26.7%로 7% 포인트 가까이 올랐지만 이후에는 월 3% 포인트 수준으로 증가세가 반토막났다.
고정금리 대출 비중이 지난 6월 6%로 가장 낮았던 하나은행도 8월 12.1%에서 9월 34.0%로 고정금리 대출이 급증한 뒤 지난달에는 다시 6% 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에 은행들은 2016년까지 잔액기준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30%까지 올리도록 한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 현실을 무시한 일방적 압박이라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변동금리 대출 편중 현상을 고쳐야 가계대출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만큼 가이드라인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은행감독국 관계자는 “장기적인 시각으로 봐야 한다”면서 “가계대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들이 노력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준구 이경원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