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국회 방문 이후] 겉으론 당론 재확인… 속에선 강경파-협상파 팽팽
입력 2011-11-16 21:45
민주당은 16일 긴급 의원총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문제를 놓고 330분간 격론을 벌여 ‘선(先)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폐기’라는 기존 당론을 유지키로 했다.
의총 결과의 핵심은 이명박 대통령이 구두로 약속한 수준으로는 당론을 변경할 이유가 없으며 양국 정부가 ISD 재협상 서면합의서를 쓰기 전에는 타협점도 없다는 것이다. 전날 이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와 제안한 ‘FTA 발효 후 3개월 내에 미국에 ISD 재협상’은 아예 토의 대상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용섭 대변인은 의총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서면합의서를 받아오면 그때 가서 당론 변경에 해당하는지 의총을 열어 다시 검토해보겠다는 것”이라며 “재협상에서는 ISD 폐기 또는 유보를 논의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 대변인은 “폐기 또는 유보라는 조건을 붙여서 재협상을 하는 게 가능하냐”는 질문에는 “그런 협정은 많다. 우리나라 조세 조약을 제가 (정부에 있을 때) 많이 해봤다”고 말했다.
의총 결과는 표면적으로는 손학규 대표 등 당 지도부와 강경파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ISD 폐기 또는 유보를 논의할 재협상 서면합의서를 받아오라’는 주장은 ‘ISD 재협상을 요구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제안과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당내 강경파와 협상파의 입장을 봉합한 측면이 강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의총에서 발언한 27명 의원 중 강경파는 14명, 협상파는 13명이었다. 의총을 마치고 나오는 지도부의 표정에 긴장감이 묻어난 이유다.
정동영 최고위원 등 강경파는 의총에서 “한번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면 되돌릴 수 없다. 민주당도 죽고 국민도 죽는다”며 결사저지를 주장했고 강봉균 의원을 비롯한 협상파는 “ISD 관련 양보를 받아내되 몸싸움은 하지 말자”고 반박했다.
양측 주장이 맞서자 협상파인 송민순 의원이 절충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송 의원은 “이 대통령이 어제 한 약속은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처럼 덧없는 이야기”라고 비판한 뒤 “ISD 재협상을 문서로 약속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한 의원은 “강경파가 6대 4 정도로 우세할 줄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양측 비중이 팽팽했다”며 “이 대통령의 구두약속을 믿을 수 없다는 지점에서 간신히 접점을 찾은 것”이라고 전했다.
협상파가 성과를 거뒀다는 시각도 있다. 서면 합의서의 내용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타협의 여지는 열어놨기 때문이다. 대표적 협상파인 김성곤 의원은 “의총장에서 이야기를 쭉 들으면서 우울하지 않았고 낙관은 아니지만 희망을 버릴 단계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여야가 인내심을 갖고 협상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파와 협상파가 맞서자 비밀 표결로 당론을 채택하자는 제안도 나왔으나 표결 여부를 정하지는 못했다.
엄기영 김원철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