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으로 본 기독교 100년-합일론] 기독교의 근본 뜻 신문 논설에 밝히다
입력 2011-11-16 18:01
합일론(예수교회보·1910)
‘합일론’은 한석진(1868∼1939)이 ‘예수교회보’에 쓴 대표적인 논설인데, 국한문 세로쓰기로 되어 있다.
‘합일론’에서는 기독교의 근본 뜻을 하나님과 사람이 합하여 만물을 번영케 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또한 인간세계에서의 합일도 중시한다. 인간은 동일한 인격이지만 처한 환경에 따라 상류, 중류, 하류의 세 계층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이 합하기 어려워졌고, 게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낙원이 고해(苦海)로 변했다고 한다. 한석진은 1925년 ‘기독신보’에 낸 논설 ‘이원(二元)의 세력’에서도 “우주를 개벽하는 공간에 이원이 나왔으니 하나님의 창조함은 광명의 일원(一元)이요 귀신의 발원함은 암흑의 일원”이라고 하며, 이제 일원으로 합하여 창조의 공훈을 찬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하나됨의 과정을 합일론에서는 이렇게 제시한다. “태초에 하나 되신 하나님이 한 사람을 만드셔서 둘이 되었으나, 마지막에는 십자가의 공적과 신앙의 결과로 하나님과 사람이 일체가 되었다.”
의주 출신의 한석진은 인삼 장사차 중국을 드나들며 초창기 기독교 선구자들인 서상륜 백홍준 등의 가르침을 받고, 23세 때인 1891년 선교사 마펫에게 세례를 받아 본격적인 전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초대 목사가 된 양전백 이기풍,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 토마스의 살해에 가담한 박춘권, 오산학교를 세운 민족운동가 이승훈 등이 그의 전도로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
그는 1907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장로교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 1909년 일본에 건너가 도쿄YMCA에서 유학생교회(현 도쿄한인교회)를 창설했다. 1910년 한국에 돌아와 장로교 기관지인 ‘예수교회보’ 사장을 맡았고, 1911년 이후 안동교회, 마산 문창교회, 신의주교회 등을 맡아 목회하면서 선교사들의 도움 없이 한국인에 의한 자립교회의 정신을 실현해 나갔다. 그는 전도 초기에 마펫이 월급을 주려 하자 거절했으며, 교회나 기독교 수양관을 건축할 때에도 오로지 한국인들의 힘으로 해냈다.
1925년 국제선교협의회 회장 모트가 내한해 주선한 ‘조선기독교봉역자의회’가 열려 길선주 이상재 윤치호 등 한국교회 대표자 31인과 마펫, 밀러, 게일 등 선교사 31인이 참여했다. 1920년대에는 한국교회가 커져 있었지만 선교사들은 여전히 치외법권적으로 군림하며 한국인을 무시하는 교만한 자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 기독교봉역자의회에서 한석진은 선교사들을 향해 “한국교회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들이 한국을 떠나야 한국교회가 발전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선교사 마펫이 화가 나서 벌떡 일어서자 한석진은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마펫 목사, 당신도 속히 이 나라를 떠나지 않으면 금후에는 유해무익한 존재가 됩니다. 마펫 목사는 처음부터 나와 함께 일한 친구요 동지로서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니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이 모임에서 ‘선교사와 조선 교역자 간의 관계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전 연세대 총장 백낙준은 한석진을 “우리나라 초대 교회의 터전을 다지고 기초를 쌓아올린 개척자의 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길선주 목사가 깊은 신앙 체험으로 1907년 대부흥운동을 일으켰다면 한석진 목사는 교계의 지도자로서 선교사가 필요 없는 자생적 신앙 공동체의 토대를 쌓아 놓았다.
부길만 교수(동원대 광고편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