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 서신] 폐지 할머니 리어카 위에 꽃화분 한 개

입력 2011-11-16 18:02


가을이 가득합니다.

온 나라에 가을의 넉넉함이 발길 내딛는 어디에나 흘러넘치고 있는 축복의 시간들이 우리 곁을 흐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 귀한 시간들과 만나고 계신지요?

저는 이렇게 화사한 가을이면 조금이라도 짬을 내어 가을나들이를 하곤 합니다. 올해는 강원도 영월로 발길이 향하였습니다.

나란히 놓인 철로와 그 위를 달리는 날쌘 기차를 볼 때면 제가 살짝 달아오름을 느낍니다. 제 몸을 온전히 맡겨야 하는 커다란 금속에 대한 두려움과 이제 곧 만나게 될 공간의 낯설음이 저를 설레게 한답니다. 두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영월은 소담스러운 도시였고 사람 사는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있는 따스한 동네였습니다.

저는 도시를 만나면 늘 다니는 곳이 시장과 골목입니다. 사장과 골목에는 겉에서 보이는 모습이 아닌 살아 있는 모습, 펄떡이는 날것의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아마도 여행이 주는 설렘 또한 가득하답니다.

영월읍내를 여기 저기 다니다 작은 골목에서 너무나도 귀한 하나님의 성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건강한 교회 명성교회’ 눈여겨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작은 간판만이 그곳에 교회가 있음을 알리고 있었고, 채 한 폭이 되지 않는 골목을 걸어 들어가니 조립식 건물로 지은 작고 아담한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학생회 모임을 하는지 열심히 설명하시는 사역자의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렸고 뒤이어 맑게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문 밖까지 흘러 나왔습니다, 작은 예배실 앞에 가지런히 놓인 아이들의 허름한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페인트칠이 많이 벗겨진 본당 외벽에 쓰인 문구가 참으로 당당하였습니다.



‘위대한 계명과

위대한 명령에 대한

위대한 헌신은

위대한 교회를 만든다.’

쇠락한 탄광촌의 흔적이 곳곳이 남아 있고, 떠나는 사람이 더 많은 작은 도시에서 위대한 교회를 가슴에 품고 한발 한발 나아가는 영월 명성교회 앞에 하나님 아버지의 큰 보살핌이 함께하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곧 다가오는 추수감사절 예배에 이웃초청 잔치를 하기 위해 저희 교회에서는 이웃에게 초청장과 함께 예쁜 꽃화분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스스로 화분을 구입해 따스한 마음을 담아 나누어 주는 행복한 릴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나눌수록 커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기쁨과 즐거움을 알게 하기 위해 저도 화분을 구입, 이웃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하는 것은 화분이 아니고 그 꽃에 담뿍 담겨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이랍니다.

늘 부지런하셔서 미아리의 새벽을 밝히시는 할머님께도 화분을 드렸지요. 리어카를 끌고 밤새 쌓여 있는 폐지와 재활용품을 수집하러 새벽별과 함께 집을 나서시는 할머니는 누구에게도 도움받기 불편하고 당신 스스로가 일을 하고 생활을 꾸리는 게 좋다면서 힘든 폐지 수집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점심때가 지나서 나오신 할머니께 빨간 꽃이 피어 있는 화분을 드렸더니 환하게 웃으시는 얼굴에 주름골이 더욱 깊어졌지만 행복해 보였습니다.

“교회도 안 나가는데 이 꽃은 왜 주는가.” “할머님을 엄청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요기에 가득 있어요, 그거 할머니한테 알려드리려구요. 할머님이 아직 모르시잖아요.”

“허허허, 그려.” 할머님은 크게 웃으시면서 폐지가 가득한 리어카 위에 화분을 딱 하니 얹으시고 끈으로 단단히 여민 뒤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폐지 한보따리 위에 소담스럽게 놓여 있는 하나님 사랑으로 할머님의 리어카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