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한 벌 옷으로 세상살기

입력 2011-11-16 18:04

말씀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쩌자고 그런 말을 쉽게 입에 올릴까 두려움이 앞선다. 무슨 말씀이 두꺼운 66권의 성경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지 꼭 알기 어려워서만은 아니다. 성경 말씀에 별로 개의치 않고 입고 먹고 마시는 게 다반사인데, 그 이외에 다른 것에서 말씀을 뭐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할까 싶어서다. 구약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폐기되었다고 하더라도 신약의 말씀을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특히나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가에 대해 신약의 말씀에서 그 기준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사막의 기독교인들은 옷 입는 방식에서도 우리와 확연히 달랐다. 그들은 예수 믿는 자가 어떤 방식으로 옷을 입어야 하는가를 하나님 말씀에서 근거를 찾고 실천하려고 했다. 그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소중했던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길을 떠날 때에는 지팡이 하나밖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고…다만 신발은 신되 옷은 두 벌 가지지 말라고”(마가복음 6장 8-9절) 하셨다.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이런 구절이 나 자신과는 무관한 듯이 무시하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사막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 말씀이라면 그 무엇이나 다 복음이었고, 그러기에 한 벌 옷이면 족하다는 복음에 따라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외출복과 작업복과 잠옷 등 모든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혁신적인 옷이었다. 이 옷은 부대자루처럼 한 통으로 되어 있어 모양도 없고 거무스름하니 색감도 없었다. 4세기 당시에 예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이런 부대자루 식의 옷을 입었다. 인간의 내면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소박하고 단순한 옷은 겸손한 마음을 드러낸다고 생각했기에, 옛 기독교인들은 부대자루 식의 옷에 거스름이 없었던 것이다.

여름 양복 두 벌에 겨울 양복 한 벌, 도합 세 벌이나 되는 옷과 몇 개 인지 셀 수도 없는 셔츠로 살아가는 내가 감히 예수님 말씀을 따라 한 벌 옷으로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미적 감각을 가진 나의 아내가 골라주는 옷만을 입는 내가 사막 기독교인들처럼 부대자루 모양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바라는 것은 유대인처럼 구약의 율법을 오늘날에도 엄격히 지키지는 않더라도 예수 믿는 자로서 성경 말씀이 일상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오늘날 아무리 대강 입는다 한들 한 벌 옷으로 살았던 예수님 제자들보다야 못할 리 있겠는가. 눈을 감고 골라도 그 옛날의 거무스레한 부대자루 패션은 깜도 안 될 그런 옷이 손에 잡힐 것이다. 영적인 삶이란 단순하고 소박하게 입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게 사막 기독교인들의 가르침일진대 다만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유명 메이커도, 고가품도 부끄러워한다는 말을 들어볼 날이 온다 치면 세상은 많이 변화되어 있을 것이다.

■ 남성현 교수는 고대 기독교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한 전문가입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대학에서 초대교회사 연구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한영신학대학교 교수와 몬트리올 대학교 초청연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