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 무덤·거대한 투기판 ‘오명’… 파생상품시장 규모 연내 3경원 넘어설 듯
입력 2011-11-15 23:02
금융시장에서 매년 급증해온 파생상품의 거래 규모가 연내에 3경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양적 규모로는 당당히 세계 1위 수준이지만 자랑할 일만은 아니다. 단기 고수익을 노린 개인투자자들의 투기판이라는 꼬리표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파생상품 시장의 질적 성장을 위한 정비작업에 착수했다.
◇파생상품시장 규모, 정부 예산의 100배=15일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장내·장외 파생상품의 총 거래대금은 지난해 말 현재 2경8537조원을 기록했다. 주가지수선물과 옵션, 달러선물, 국채선물, 주식워런트증권(ELW) 등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장내파생상품 거래대금이 1경4538조원으로 집계됐다. 이자율, 통화 등과 연계된 장외파생상품 거래대금은 1경3999조원이었다.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1경4266조원을 기록한 장내파생상품은 연말까지 1경7119조원, 6월 말까지 6614조원을 기록한 장외파생상품은 연말까지 1경3229조원이 거래될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 추세로 볼 때 올해 말에는 전체 거래대금이 3경35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올해 정부 예산(309조567억원)의 100배에 가까운 규모다.
국내 파생상품 시장은 1995년 개설 뒤 매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며 세계 1위 규모를 지켜오고 있다. 지난해 한국거래소의 장내파생상품 거래 계약건수는 37억5200만 계약으로 전 세계 파생상품시장 거래량의 16.8%를 차지했다. 이 점유율은 2위인 독일거래소(18억9700만 계약, 8.5%)의 2배 수준이다.
◇현실은 ‘개미들의 무덤’… “질적 성장 꾀해야”=하지만 파생상품시장은 단기 고수익을 노린 개인투자자들이 몰린 투기판이라는 지적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파생상품시장이 급격히 커진 이유는 단기 매매를 통해 대박을 꿈꾸는 개인, 특히 스캘퍼(초단타매매자)들이 대거 모여들었기 때문”이라며 “진정한 헤지(변동성 위험회피) 수단이라기보다 투기판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외국인투자자나 기관투자자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함부로 파생상품시장에 뛰어들었다가 큰 손실을 입는 경우가 많다. 금감원에 따르면 장외파생상품인 FX마진거래의 경우 개인투자자의 90%가 손실을 입고 있다.
파생상품시장에서는 시세조종 등 불공정행위도 만연해 있다. 지난 5월에는 지수 하락에 베팅한 한 풋옵션 투자자가 시장에 불안심리를 퍼뜨리기 위해 서울 시내 곳곳에 폭발물을 설치한 사건도 발생했다. ELW 거래에서 스캘퍼들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11개 증권사 대표들은 검찰에 기소된 상태다.
금융당국은 부작용으로 얼룩진 파생상품시장에서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작업에 본격 나섰다. 금감원은 내년 1월부터 증권사가 신용파생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매매·중개할 때 거래내용과 신용등급을 금융투자협회에 당일 공시토록 했다. 거래소 파생상품시장본부는 내년을 ‘질적 성장’의 해로 결정, 장기투자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사업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