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국회 방문] ‘ISD 재협상’ 보따리 들고온 MB “나를 믿어 달라”
입력 2011-11-15 22:29
15일 오후 3시 국회 제1접견실에서 시작된 이명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회동은 1시간20여분이 지나서야 끝났다. 예상보다 길어진 대화에서 이 대통령은 “나도 자존심 있는 사람이다” “왜 미국 대통령만 믿느냐” 같은 직설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모두발언에서 이 대통령은 “무엇이 문제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 그 의지를 양당 대표에게 보여주러 왔다”고 했고,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저희 입장은 변함이 없다. 최소한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문제는 해결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조항을 설명하려 하자 이 대통령은 손을 들어 “내가 하면 된다”고 제지했다. 이 대통령은 “ISD는 이미 노무현 대통령 때도 논란이 됐다가 다 통과된 사항인데, 왜 민주당에서 자꾸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손 대표는 “대통령의 국회 방문이 야당 압박과 일방 처리 수순 밟기란 의혹이 있다”고 했고 이 대통령은 “야당을 곤란하게 하려면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나는 그렇게 정치적이지 못하다”고 부인했다.
손 대표와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하와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재협상 얘기를 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정상 간 논의는 얘기할 수 없는 것”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에게 재협상 약속을 받아오라는 야당 요구를 반박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재협상을) 요구하면 미국도 응하게 돼 있는 조항(한·미 FTA 22조)이 있는데, 미국에 우리가 요구하려 하니 미리 허락해 달라 하는 건 주권국가로서 맞지 않다.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 정부가 그렇게 하려면 오히려 국회가 말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한·미 FTA 발효 3개월 내에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겠다는 ‘제안’을 한 뒤 “미국이 뭐라고 하면 내가 책임지고 미국을 설득하겠다. 왜 야당은 오바마 대통령만 믿느냐, 한국 대통령을 믿어야지”라고 했다. 박희태 국회의장도 “지금 재협상을 요구할 경우 미국이 거절하면 그만이지만, 협정이 발효되면 재협상 조항 때문에 미국도 응할 수밖에 없다. 훨씬 효과적이다. 오늘 대통령에게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다”며 거들었다.
ISD 문제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줄곧 ‘재협상’이란 표현을, 손 대표와 김 원내대표는 ‘폐기’라는 단어를 써서 서로 맞섰다. 야당 측에서 이 제안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이 대통령은 “나를 믿어 달라. 내가 나라 망치려고 하는 게 아니지 않냐”고 강조했고 손 대표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대통령의 제안을 당에 전달하겠다”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통령이 국회에 가서 여야 지도부와 이런 방식으로 구체적 문제를 논의한 건 헌정 사상 처음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은 2008년 2월 취임식, 7월 18대 국회 개원연설, 10월 정기국회 시정연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國葬) 때에 이어 다섯 번째였다. 업무를 위한 방문은 2008년 10월 이후 3년1개월 만이고 공식 행사가 아닌 자발적 방문은 사실상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여기가 바뀌었네. 옛날엔 식당이 없었는데…”와 같은 말을 하며 3년여 만에 찾은 국회 본관 모습을 낯설어했다.
태원준 유동근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