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서민정] 손끝으로 하는 생각
입력 2011-11-15 17:38
앗, 추워! 갑자기 날씨가 코끝 시리게 쌀쌀해졌다. 사실 11월 요맘때에 걸맞은 날씨지만, 한동안 초겨울 기온을 훨씬 웃돌다가 추워지니 몸이 더 움츠러든다. 날씨 탓인지 어제 아침에는 평소 일어나던 시간이 되어도 몸이 쉬이 깨지 않았다. 극세사 이불의 보들보들한 느낌을 조금이라도 더 느껴 보려고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문득 생각이 ‘촉감’에 미쳤다.
근래 내가 가장 자주 접하는 촉감이 뭘까. 사무실 안에서는 컴퓨터 키보드와 A4용지, 사무실 밖이나 집에서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매끈한 액정화면이 손끝에 가장 자주 닿는 것들이었다. 꽤나 오랫동안 써 왔던 그림일기도 이제는 노트와 연필 없이 태블릿PC를 사용해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가상의 키보드로 글을 쓴다. 지하철에 서서, 카페에 앉아서 끊임없이 인터넷을 검색하고 전자책을 읽고 음악을 듣다 보니 눈과 귀로 접하는 정보의 양은 늘고 있는데 손으로 접하는 촉감은 제한되고 있었다.
언뜻 생각해 보면 촉감이 제한된다는 것이 내 감성에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이성에는 별 영향을 안 미칠 것 같다. 주어진 권한 안에서 뭔가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팀장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 정보를 읽는 눈과 해독하는 뇌가 필요하지 손끝이 필요한 건 아닐 듯하다. 종이에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일기를 쓰든, 화면에 손가락을 휘휘거리며 쓰든 일기 쓰는 행위 자체에서 그날 하루를 반추하게 되는 것이지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할까.
이에 대해 흥미로운 답을 내놓은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심리학자 조슈야 애커만 교수의 연구팀은 촉감이 이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촉감은 사람의 판단과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어떤 사회적 문제에 정부 예산을 지원해야 할지를 물었다. 이때 검토할 자료를 무거운 문서철과 가벼운 문서철 중 하나에 꽂아 제시했다. 결과를 비교해봤더니, 무거운 문서철을 든 사람들이 사소한 문제보다 대기오염과 같은 사회문제에 좀 더 많은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하나 더 예를 들자면, 실험 대상자들에게 딱딱한 나무블록과 부드러운 담요 중 하나를 만지게 한 후 사장과 직원 간의 대화 글을 읽도록 했다. 그 후 글 속의 직원 성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딱딱한 나무블록을 만진 사람이 직원의 성격을 좀 더 완고하게 보았다고 한다.
이 실험 결과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자기 경험을 돌이켜보면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판단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대화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벌써 몇 년째 ‘소통불능’이 화두인 우리 사회에서 머리와 입만이 아니라 따뜻한 차 한잔을 먼저 권하는 손끝도 필요한 건 아닐까.
서민정(문화예술교육진흥원 대외협력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