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수방랑기(22)-골이 텅 빈 전도자
입력 2011-11-15 11:24
청년예수방랑기(22)
골이 텅 빈 전도자
김빌립 전도사라는 이가 있었습니다. 최근 켄터키 주 루이빌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교회 이름도 <한인전도교회>였습니다. 전도사 직분으로 교회를 개척한 것도 대견스럽거니와 그것도 장로교회나 성결교회가 아니라 ‘전도교회’로 한 것이 눈에 확 뜨이는 대목이었습니다. 빌립이라는 이름도 전도자 빌립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 날 아침에도 김빌립 전도사는 전도에 관한 성경말씀을 열심히 외우며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막1:38).
이 말씀을 서른 번도 더 외웠습니다. 그리고 전도의 좋은 열매를 맺게 해달라고 애절하게 기도하는 음성이 나 예수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그는 오전 10시쯤에 자동차를 타고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나 예수도 남몰래 그를 따라나섰습니다. 그가 주차한 곳은 도넛 가게였습니다. 시동을 끄고 운전대를 붙잡고 다시 한 번 기도하는 그의 모습이 듬직해 보였습니다.
가게에 들어서니 세 사람이 줄을 서서 커피와 도넛을 주문하고 있었습니다. 흑인 한 사람과 백인 두 사람입니다. 바깥은 한 겨울이라 몹시 추웠고 그래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와 도넛은 입맛을 당기기에 넉넉했습니다.
“넥스트(Next, 다음 번이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 근처에 개척교회를 설립한 김빌립 전도사입니다.”
도넛 가게가 한가한 시간대여서 그 다음에는 손님이 없었습니다. 김 전도사는 한국말로 전도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가게 주인은 약간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네에....교회를 오픈하셨군요. 소문 들었습니다만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네요?”
그렇게 말하는 음성에도 신경질이 섞여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 받고 집행날짜만 기다리는 존재이지요. 형님도 언제인가 돌아가실 것인데 그러면 영혼은 어디로 가게 되는 지 충분한 준비가 되셨나요?”
“저는 3년 전에 미국에 온 이민 초년병입니다. 겨우 가게 하나 차려서 입에 풀칠하고 자식 교육시키기에 바쁜데 무슨 죽은 뒤 일까지 챙기겠습니까? 전도는 다른 곳에 가서 하시지요.”
그는 퉁명스럽게 대꾸한 뒤에 아예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김 전도사는 조금 큰 소리로 그 자리에서 기도했습니다. 저 불쌍한 영혼을 꼭 구원해 주시라는 것과 가게도 축복으로 채워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나오려는 찰라 뒤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싸가지 없는 녀석, 전도하려면 도넛 하나라도 사 먹을 일이지? 맨 입으로 전도만 하다니....전도사와 목사들은 입만 천당 간다는 말이 맞지. 하여간 골이 텅 비었어.”
김빌립 전도사는 “골이 텅 비었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피가 거꾸로 도는 모양입니다. 얼굴이 시뻘개 가지고 씨근덕거리며 숨을 쉬었습니다. 그 때 나 예수는 잽싸게 그의 팔을 잡고 문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는 내가 아침 먹고 나오는 고객인 줄 알았습니다.
“진정하시지요. 전도하려면 어디 제 골 가지고 됩니까? 그분의 골수로 꽉꽉 채워야지요. 해골언덕에서 처형당한 그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