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 장애인을 위한 콘서트 여는 가수 이수나 “장애 부모님 빈 자리 채워준 건 신앙이었죠”
입력 2011-11-14 20:42
“장애인을 부모로 둔 자녀는 사회적으로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설령 장애가 없어도 부모와 같이 취급돼 방치되기 십상이죠. 하지만 제 모습을 통해 장애인의 자녀들도 잘 자랄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10년간 카페 통기타 가수로 지내다가 2008년 앨범을 낸 트로트 가수 이수나(35)씨의 말이다. 그를 14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경쾌한 트로트 곡인 ‘바빠서’를 중심으로 장애인을 위한 콘서트를 준비 중인 이씨는 비장애인이지만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아버지와 새어머니, 배다른 두 여동생이 장애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남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모와 두 동생을 고향 안동에서 서울로 데려와 부양하고 있다.
밝은 표정으로 기자를 맞은 그는 장애를 가진 부모님과 배다른 동생의 이야기를 전혀 거리낌 없이 풀어갔다. 오히려 이야기를 하면 기분이 더 좋아진다고 했다. 부모가 장애인이어도 환경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란다.
이씨는 1976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초·중교를 다닌 뒤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해 졸업 후 대구의 라이브카페와 레스토랑에서 통기타를 들고 팝송을 불렀다. 노래를 직업으로 삼게 된 것은 한 기획사의 가수 오디션에 1등으로 합격, 서울로 상경하면서부터다. 5세 때 헤어진 이씨의 친모는 3명의 딸을 낳았는데 그는 둘째 딸이었다. 당시 고3이던 막내 동생을 위해 이씨는 스물한 살에 가수의 꿈을 품고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기획사는 이씨에게 돈을 요구했다. 당장 생활비와 동생 학비가 필요했던 그는 기획사를 포기하고 강남의 카페와 라운지 레스토랑을 전전하며 통기타 가수로 활동했다.
“노래를 해야 가슴속 서늘한 구석이 풀리곤 했어요. 전 노래가 없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판잣집에 살고 남의 집 처마 밑에 살더라도 음악을 포기한 적이 없었죠.”
어느 정도 통기타로 입소문을 탄 그가 성인가요로 앨범을 만든 것은 31세 때 음반 관계자들에게 목소리를 선보이게 되면서부터. 음반 관계자들이 호소력 짙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곡을 만들어줬다. 심수봉 스타일을 버리고 성인가요 가수가 되기 위해 3년간의 맹연습 끝에 그는 첫 앨범을 냈고 올해 단독 콘서트를 하게 됐다.
오는 18일 서울 영등포아트홀에서 열리는 그의 콘서트명은 ‘장애인을 위한 1대 1 멘토-멘티 콘서트’.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무대를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처음엔 ‘비장애인들이 불편해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지만 걱정하진 않아요. 오히려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공연엔 감동과 즐거움이 있을 거예요. 장애인을 불쌍한 시선이 아닌 가족처럼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죠.”
매달 인천 기독교 장애인시설에서 노래 봉사를 하는 이씨는 노인복지회관과 보육원 등 3∼4곳에서도 비정기적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8시간 동안 콘서트 준비를 하는 그가 이토록 봉사에 적극적인 것은 신앙 때문이다.
“부모님 대신 나를 지켜준 것은 교회와 성경 말씀이었어요. 서울에 와서 고생할 때도 주변 교회에서 연습할 장소와 생필품을 지원해줬고요. 장애인 4명을 돌보는 저를 위해 서울부터 제주까지 양질의 기독교 장애인시설을 찾아준 곳도 교회였습니다.”
그는 요즘 ‘도가니’ 등으로 사회문제가 된 기독교재단 장애시설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정신장애를 가진 부모님도 좋은 시설에서 잘 지내고 있고, 집 앞에도 못 나가던 두 여동생이 글을 깨치고 돈 개념을 이해하게 된 것도 장애시설을 통해서였다. 서울 아현성결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그는 이 모든 변화가 신앙의 힘 덕분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아직도 저의 신앙적 깊이와 넓이는 깊지도 넓지도 못해요. 부모님과 우리 가족들이 살아가는 걸 보면 모든 게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게 분명합니다. 하나님만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올라요.”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