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찬장에 反월가 노래 오바마는 눈치도 못채… APEC 정상들 당황
입력 2011-11-14 18:29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들이 만찬장에서 현지 가수의 ‘특별선물’을 받았다. 하와이의 유명 가수인 마카나(현지어로 선물이란 뜻·본명은 매튜 스왈린카비치·33)는 12일(현지시간) 와이키키 해변 할레코아 호텔 만찬장에 초대됐다. 하와이 출신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에서 현지 분위기를 연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무대에 오른 마카나는 처음에는 전통음악을 연주했지만 이내 자신이 준비한 음악과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최근에 만든 신곡 ‘우리는 다수(We are the many)’였다. 삼엄한 경호를 피하려고 입었던 재킷과 와이셔츠도 벗었다. 안에 입은 흰색 티셔츠에는 ‘알로하(사랑·평화를 뜻하는 인사말)로 점령하라(Occupy with Aloha)’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통기타의 경쾌한 선율이 만찬장에 울려퍼졌다. 월가의 탐욕과 워싱턴DC의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후렴구는 “우리는 거리를 점령할거야. 우리는 법원을 점령할거야. 우리는 당신들의 사무실을 점령할거야. 당신들이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명령을 따를 때까지”였다. 그는 무려 40분 동안이나 템포를 바꿔가며 반복해서 노래를 불렀다.
APEC 정상회의 만찬장에 이처럼 반(反)월가 시위를 지지하는 노래가 등장하자 정상들이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마카나가 노래를 부르자 참석자 일부는 고개를 돌려 쳐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다른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느라 반월가 노래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마카나는 “만찬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 같은 방법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긴장되고 두려웠지만 즐거웠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전 준비과정과 공연 현장을 담은 동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그가 노래하는 동안 밖에서는 반월가 시위대 400여명이 시위를 벌였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