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창원에서 본 방산업체

입력 2011-11-14 17:47


경남 창원공업단지는 기계전문기업 235개가 들어서 있는 대규모 기계공업전문단지이다. 이 단지에는 방산업체들도 자리 잡고 있다. 창원공단이 조성된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1973년 1월 31일 청와대 국산병기전시실에서 오원철 제2경제수석비서관이 ‘방위산업건설 및 공업구조개편’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에 중화학공업 육성시대가 열렸고 창원은 주요 거점이 됐다.

오 비서관은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은 표리일체(表裏一體)”라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브리핑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국무총리 등이 참석했다. 청와대에 국산병기 전시실이 있는 줄 몰랐던 각료들은 비공개리에 개발된 국산무기들을 보고 어리둥절해했다고 한다.

오 비서관은 한반도 남단에 종합화학공장을 건설하고 그 옆에 화약공장을 짓겠다고 말했다. 대형군함도 건조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초대형 항공모함도 만들 수 있는 조선시설을 갖추겠다고 했다. 전자병기는 경북 구미공업기지에서 생산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두컴컴한 하코방 공장에서 병기가 나오는 장면이 신문에 게재된다면 병사들 사기가 떨어지고 국민들도 실망할 것”이라며 “현대식 공장에서 대포, 탱크가 쏟아져 나온다면 사기가 충천할 것”이라며 브리핑을 마쳤다.

지난주 방문한 창원과 구미의 방위산업체들은 당시 오 비서관의 기대를 모두 충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크게 어긋나지 않을 만큼 우수한 방산제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미국에서 도입한 미사일 호크와 나이키의 정비로 시작한 한 회사는 이제는 함대함 유도무기 해성, 대잠수함용 경어뢰 청상어 등을 생산하고 첨단 전자파체계 종합시험장까지 갖추고 있다. 또 다른 업체는 지대공 미사일 철매II의 다기능레이더, 저고도 방공미사일 천마의 탐지추적레이더와 사격통제장치를 제작하고 있다. 첨단설비를 이용한 제작과정과 청결한 작업환경에서 나온 이들 제품들은 병사들이나 국민들이 자부심을 지닐 만했다.

하지만 임직원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사업 환경이 좋지 않은데다 수출여건도 개선되지 않고 있고 잇따라 터져 나온 국내개발무기들의 결함, 원가부정사건으로 이미지가 크게 나빠졌기 때문이다. 방산품은 구매자가 국가로 제한돼 있어 국내 시장규모는 크지 않다. 업체들은 수출로 방향전환하고 있지만 여건은 우호적이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국방비가 줄고 있다. 방산제품 구매력이 축소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 업체가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은 제한돼 있는데 선진국들도 이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방산을 신성장산업으로 키운다는 정부의 약속은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더 힘든 것은 방위산업을 ‘도둑놈 산업’으로 바라보는 눈길이다. 한 임원은 “이윤도 별로 남지 않지만 국가안보에 기여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해 왔는데 비리집단처럼 여겨져 그만두고 싶다”고 토로했다. 해외무기도입과정에서 무기중개상이 저지른 비리도 방산업체가 한 짓으로 치부되는 것도 억울하다. 이렇게 된 데는 방산업체의 책임도 크다. 특히 원가산정은 투명하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였다. 오죽하면 상용제품에도 ‘국방색(국방용)’만 입히면 원가기준이 없어져 값이 제멋대로 뛴다는 비판이 나오겠는가.

지난 40여년간 방위산업은 꾸준히 성장해왔다. 한 광학장비 생산 중소업체는 해외기업이 관심을 갖고 투자를 저울질하고 있을 정도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더디기는 하지만 수출액수도 늘고 있다. 그러나 창원의 방산업체들이 당초 기대됐던 수준까지 가려면 갈 길은 멀다. 방산지원이 더 필요한 이유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