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96) 꽃이 부끄러운 뒷거래
입력 2011-11-14 17:48
국화꽃 더미 앞에서 벌어진 얄궂은 장면이다. 웃통 벗고 맨살을 드러낸 사내가 대님을 맨다. 구겨진 상투 아래 머리칼은 흐트러졌다. 길게 땋은 머리에 댕기 늘어진 소녀가 고개를 갸울인다. 구김살 진 치마와 속곳을 채 추스르지 못한 차림새다. 얄망스런 할멈이 사내에게 술 한 잔을 건네는데, 손으로 입을 가리며 무슨 소린지 수군거린다.
뭐하는 짓이기에 이리 점잖지 못한가. 정황으로 봐서 알겠다. 젊은 서방이 어린 기생의 초야권을 샀다. 옛말로 ‘머리 얹어주는’ 성 거래의 현장이다. 이미 일은 치렀다. 얍삽하게 생긴 서방의 입가에 밉상스런 흡족함이 배었다. 저 음충스런 할멈이 뚜쟁이 노릇을 했다. 남자로 치면 기둥서방 노릇을 하는 노구(老 )다. 그녀가 입에 발린 말로 어린 것을 달랜다.
미성년을 상대로, 그것도 길바닥에서, 이 무슨 남우세스런 짓거리인가. 아동 청소년 성보호법도, 도가니 법도 통하지 않던 조선의 색줏집 풍속을 참으로 뻔뻔스럽게 그렸다. 그린 이야 물을 것도 없이 혜원 신윤복이다. 화단의 이단아로 떠들썩했던 그에게 걸맞은 소재 아닌가. 혜원의 낯 뜨거운 붓질은 그림에 적힌 글에서 한 수 더한다. 당나라 원진의 시를 따왔는데, 곱씹어보면 야릇하다.
‘국화꽃 쌓인 집은 도연명이 사는가/ 빙 두른 울타리에 해가 기우네/ 꽃 중에 국화를 편애해서가 아니라/ 이 꽃 지면 다른 꽃이 없다네.’ 원시의 뜻은 고상하다. 하여도 마지막 두 구절이 저 서방의 시커먼 뱃속과 겹친다. 갈급한 색정이 숨어있다. 동기(童妓)의 자태는 슬프다. 혜원이 미성년의 초상권을 배려해서일까, 옆모습이다.
손철주(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