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 타블로 “날 미워하는 사람들도 내 음악이 위로 됐으면…”
입력 2011-11-14 08:04
지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타블로 사태’를 기억하는지. 뮤지션 타블로(본명 이선웅·31)의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이 거짓이라는 주장, 이런 음해성 억측에 동조해 한 인터넷 카페에 모인 무려 18만여명의 네티즌들,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 온갖 악성 루머, 그리고 이어진 경찰 조사….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우리네 인터넷 문화의 하수구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같은 해 10월 경찰이 ‘진실’을 확인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타블로의 삶, 청년 이선웅의 삶은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타블로는 이후 음악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컴백을 기다렸지만 복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타블로의 첫 솔로 음반 ‘열꽃’이 발매됐다. 기다림이 갖는 힘이란 게 이런 걸까. 그의 신보는 국내 음원차트는 물론이고 미국과 캐나다 아이튠즈 힙합 앨범차트에서도 모두 1위를 차지하며 세계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에서 타블로를 만났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그런 느낌을 받았다. 담담한 표정, 느릿한 말투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복귀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많은 분들이 환영해주시고 좋아해주셔서 감사드린다. 경이롭기도 하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행복하다. 예전엔 ‘행복하다’고 말하면 행복이 뭔지도 모르면서 ‘행복하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뭐가 행복한 건지 알겠다.”
-신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
“제 주변만 봐도 힘들고 외롭고 아픈 사람들이 많다. 제가 예전보단 그런 분들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으니, 제 음악이 그런 분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제 마음이다. 저를 여전히 미워하는 분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언젠가 가슴 아픈 일을 겪으실 수 있지 않나. 지금의 내 음악이 그때 그분들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음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음악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때가 있었고, 이걸(음악을) 안 하면 미치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나는 가수다’ ‘무한도전 가요제’ 같은 음악 관련 프로그램이 많았지 않나. 그런 걸 보면서 감동을 느꼈고, 그런 게 (복귀에) 도움이 됐다. 또 주변 사람들이 ‘넌 음악을 해야 된다’고 조언을 많이 해줬다.”
-아내(영화배우 강혜정)가 많이 힘이 됐을 것 같다.
“이 음반은 정신적인 측면만 놓고 보면 혜정이랑 같이 만든 음반이다. (아내는) 제가 힘든 것보다 배로 힘들었을 거다. 혜정이가 아니었다면 과연 제가 지금 이렇게 좋은 회사를 만날 수나 있었을까 싶다(타블로는 지난 9월 아내의 소속사이자 빅뱅, 2NE1 등 실력파 아이돌 그룹이 소속된 대형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왜 하필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없었나.
“지금도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이해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 일을 겪은 게) 저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저보다 마음 약한 사람이나 중심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이 그런 일을 겪었으면 어떻게 견뎌냈을까 싶다.”
-지난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뭔가.
“세상은 특이한 곳인 것 같다(웃음).”
-삶의 가치관 같은 것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
“예전에는 정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제가 할 수 있다고 상상한 것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지난해 5월 낳은) 우리 딸이 행복하게 잘 커줬으면 하는 게 제 소망이다. 아기가 웃고 있는 거 보면 너무 좋다. 내 아이가 계속 웃을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열꽃’이라는 음반명은 어떻게 지은 건가.
“딸이 올해 초 감기에 걸렸던 적이 있다. 응급실로 데려갔는데도 애한테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 딸이 아팠던 4일 동안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아기들이 보통 열이 많이 나면 몸에 열꽃이 피지 않나. 전 이게 되게 안 좋은 건지 알았다. 그런데 혜정이가 ‘열꽃이 피었으니 이제 나을 거야’라고 말하더라. 열꽃은 (아픔이) 거의 끝나간다는 신호였던 거다. 그래서 그때 ‘열꽃’이라고 (음반명을) 정해 놨다. 이렇게 결정하고 나니 만들던 음악도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더라.”
-본인 역시 이런 ‘열꽃’ 단계를 지나왔다고 생각하나.
“저는 이제 괜찮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