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지 왜 천막부터 치나요”… 개콘 ‘비상대책위원회’본부장 김원효

입력 2011-11-13 18:20


글씨가 깨알 같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글씨. 그렇게 A4 용지 두 장을 꽉 채운 대본을 보니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대 오를 때마다 스트레스가 엄청나겠구나.’

대본의 주인공은 KBS 2TV ‘개그콘서트(개콘)’의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본부장’ 역할을 맡는 코미디언 김원효(30)다. 부산 사투리에 어눌한 말투로 군데군데 “안돼애∼”를 섞어 연기하는 그의 무대가 시작되면 안방극장엔 웃음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최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이렇게 뭔가를 많이 외워보는 게 처음”이라고 했다. “2주 전 무대에서 대사를 까먹어 처음으로 NG를 냈어요. 한 번 NG를 내고 나니 더 부담이 되네요.” 이런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엔 웃음기가 번져 있었다. 요즘 인기 절정에 지난 9월엔 예쁜 신부(개그우먼 심진화)까지 얻었으니 웃음이 떠나지 않는 게 당연했다.

2005년 데뷔한 그는 ‘개콘’의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로 2007년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남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꽃미남수사대’ 등 인기 코너를 만들어내며 화제를 낳았다.

하지만 그가 스타 반열에 올라선 건 역시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서다. 이 콩트의 얼개는 간단하다. 테러범의 계획을 들은 ‘본부장’ 김원효. 남은 시간은 10분. 그런데 다급한 상황에서 그는 테러를 막을 수 없는 이유만 구구절절 설명하다 시간을 다 보낸다. 여기엔 우리 사회의 안일한 관료 문화를 풍자하는 코드가 숨겨져 있다. 이 콩트를 어떻게 생각하게 된 건지 물었다.

“무슨 사고가 터지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현장에 천막치고 회의부터 하잖아요. 그걸 볼 때마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지 왜 천막부터 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산이 고향인 그는 2003년 배우의 꿈을 안고 상경했다. 그런데 외아들인 그가 배우의 길을 선택하기에 앞서 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정이 한 편의 개그 같았다.

“아버지한테 제 결심을 말씀드리기가 정말 힘들더라고요. 너무 고민돼 한 달 동안 술만 마시다 겨우 제 결심을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서울 가서 해봐라’ 라고 너무 쉽게 말하시더라고요. ‘난 한 달 동안 뭐한 거지?’ 싶었죠. ‘돈도 안 벌어놨는데, 서울 가면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도 들고(웃음).”

배우가 되고자 했던 그가 코미디로 진로를 틀게 된 이유도 들을 수 있었는데, 서울 대학로에 있는 코미디 전용관 ‘갈갈이홀’에서 본 개그 공연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연기 하나하나에 관객 반응이 바로바로 전해지는 코미디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것이다.

요즘 인기를 실감하는지 묻자 “이런 걸(언론 인터뷰) 할 때 느낀다. 현재 들어온 인터뷰 요청이 10곳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다시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모르는 사람들한테 계속 전화가 와요. (아들이 자랑스러우신지) 부산에 사는 아버지가 제 연락처까지 적힌, 제 이름의 명함을 만들어서 돌리고 다니시거든요. 자제를 당부해도 안 들으시네요(웃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