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지탱하는 모든 것은 섬이다”… 화가 박병춘의 ‘섬’ 이야기
입력 2011-11-13 17:45
“예술가는 세상에 떠 있는 섬, 나는 그 섬을 그리고 싶다.”
한국화의 현대화를 모색해온 박병춘(45·덕성여대 동양화과 교수) 작가는 틈만 나면 전국의 산과 들로 여행을 떠난다. 한지에 먹과 아크릴 등을 이용해 붓질하는 작가는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곳곳을 다니며 계절마다 변하는 나무와 숲, 풀과 산을 스케치한다. 6∼7년 전부터 국내 섬들을 찾아 400여점의 드로잉을 하고, 2007년 겨울에는 한 달간 제주도의 풍경을 스케치했다.
스케치 여행에서 작가는 세상에 떠다니는 수많은 섬들과 조우한다. 그에게 섬은 작품 소재의 차원을 넘어 삶의 일부다. “서해와 남해, 경남 통영과 전남 신안, 강원도의 계곡에서, 히말라야의 길 위에서도 섬을 만났다. 나에게는 바다에 떠 있는 섬만이 섬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홀로 지탱해 가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섬으로 보인다.”
작가는 처음엔 사람들이 사는 섬을 그렸다. 섬에서 만나는 길과 풍경을 그리다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다도해를 그렸다. 배 위에서 만나는 떠다니는 섬도 그렸다. 섬에서 주워온 돌에 물그림자를 넣어 섬이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때문인지 몇 날을 고민하다 자신 안에 떠다니는 섬을 그리니 비로소 마음이 평온해졌다고 한다.
그렇게 그린 섬 그림들을 경기도 파주 헤이리 갤러리 이레에서 12월 1일까지 펼쳐 보인다. 20여점의 출품작 가운데 통영의 섬들을 그린 ‘욕지도를 날다’ ‘사량도를 날다’가 인상적이다. 초록의 산과 너무 푸르러 오히려 하얘진 바다가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섬의 모습을 시원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유영하듯 섬을 내려다보는 ‘박병춘식 아이콘’도 어김없이 들어 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는 그림 가운데 ‘창밖의 풍경-산방산’은 자유분방한 붓의 놀림을 통해 경쾌하고 즐거운 이미지를 선사하고, ‘독도 위를 날다’는 뾰족한 바위를 날카롭게 표현함으로써 외세와 외로이 맞서 싸우는 독도의 강인한 모습을 나타냈다. ‘춤추는 다도해’ 등 일필휘지의 붓질로 단숨에 그린 드로잉은 강렬하면서도 추상적인 섬의 형태를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는 설치 작업은 없이 섬 그림만 출품했다. ‘섬’을 주제로 한 이유에 대해 작가는 “몇 년간 돌아다니다 어느 날 갑자기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던 이미지가 그림으로 다가오는 때가 있다”며 “여행을 하다 보면 풍경과 사물이 내 자신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바다 위로 떠 있는 섬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고 이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에 1년간 안식년을 맞아 가족과 함께 유럽 각지를 여행할 계획이라는 그는 “아마도 돌아오면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며 “새로운 시작에 앞서 그동안의 작업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 그의 작업이 어떻게 달라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031-941-4115).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