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신창호] 그리스 살리는 독일
입력 2011-11-13 18:01
‘영혼’을 뜻하는 영어 ‘사이키(Psyche)’는 그리스어 ‘프쉬케’에서 나왔다. 의성어인 프쉬케는 사람이 숨을 쉴 때 ‘쉬∼’ 하고 들이마셨다 ‘프∼’ 하고 내뱉는 모습에서 따왔다.
철학자 게오르그 헤겔은 “세상에서 가장 철학적인 말은 그리스어와 독일어”라고 했다. 의성·의태어로 이뤄진 그리스어는 말만 들어도 그 말이 지칭하는 구체적인 사물을 그려낼 수 있을 만큼 쉽고, 독일어는 고등언어 가운데 가장 어근(語根)이 적어 별도로 추상적인 단어를 외울 필요가 없어서란 것이다. 어려운 철학에 쓰는 말까지 어려워선 보통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으니 가장 쉬운 말이 가장 철학적인 언어란 주장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말을 가진 두 나라가 요즘 화제다. 겉으로 보면 두 나라는 공통점이 많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좌파가 정치의 중심으로 등장했다는 점,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복지천국이라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속을 잘 들여다보면 독일과 그리스는 정말 다르다. 독일의 복지는 철저히 자국민이 감당할 수 있는 세금과 경제규모에 제한돼 있다. 부유세와 누진세, 세계 최고의 제조업이 독일식 사회보장의 원동력이다. 1945년 2차대전 패전 이래 독일은 복지를 제도화할 때마다 근로계층의 양보를 받아냈다. 세계에서 가장 적은 노동시간, 낮은 실업률의 혜택을 누리는 독일 근로계층은 대신 월급도 적게 받는다. 대신 경제 규모와 체질을 키우는 데에는 어느 나라보다 열성을 보였다. 파이는 모두가 뜯어먹어야 하는데 나눠주기만 하면 금세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반면 그리스식 복지는 남에게 빌려온 빚을 근거로 한다. “원하는 건 다 들어주자”는 슬로건을 내세운 그리스 사회당은 일자리, 퇴직연금, 엄청난 공무원 숫자를 보장하기 위해 3453억 유로(530조5672억여원)의 돈을 빌렸다. 그리스인은 이 부채로 만든 파이를 뜯어먹기만 했다. 변변한 제조업과 일자리가 없고, 세금을 내야 할 부자들 사이에선 탈루가 일반적인 현상이 돼 있다는 소식이다.
이제 그리스의 파이는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그리스인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게 작게 먹고는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공멸의 그림자가 바로 코밑까지 왔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그들의 운명은 유로존에서 가장 부자인 독일의 손에 달렸다. 그리스의 ‘프쉬케’에 숨을 공급하는 산소는 이미 자본주의 경제가 된 지 오래다.
신창호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