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칼럼] 반대로만 가는 게 능사는 아니다

입력 2011-11-13 18:00


휴대전화가 나오기 전인 1970년대, 그러니까 기자의 올챙이 때 얘기다. 출입처에 나가면 외부에서 기자에게 연락할 수 있는 길은 기자실 유선 전화뿐이었다. 데스크가 지시하기 위해 기자실로 전화를 하여 기자를 찾는다. 기자가 전화를 받으면 데스크는 취재하지 않고 왜 기자실에만 앉아 있느냐고 꾸지람이다. 전화를 받지 못하다가 나중에 연락이 되면 데스크는 또 어디 박혀 있다가 이제야 나타나느냐고 호통이다.

서민 복지도 중요하지만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를 추억삼아 꺼낸 것은 그때의 데스크 험담을 하자는 게 아니다. 기자가 칼럼을 쓰다 보니 그 대상에 오른 사람들이 이래도 비판하고 저래도 비판하는 처지가 됐다 싶어서이다.

서울시장의 시정과 관련한 얘기다. 오세훈 시장 때의 시정(市政)에 대해 이런 저런 시비를 하던 기자가 박원순 시장의 시정에 대해서도 이말 저말 해야겠기에 든 생각이다.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하던 것만 빼고(Anything But Clinton ABC), 즉 클린턴과는 정반대 방향으로만 국정을 운영하면 된다고 했듯이 박 시장이 오 전 시장이 가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시정을 운영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시장이 바뀌면서 서울시정의 방향이 토건 사업에서 복지사업 쪽으로 크게 선회했다. 내년도 서울시 예산안을 보면 오 전 시장이 필생의 역점 사업으로 추진했던 한강르네상스사업이 대부분 중단되거나 유보됐다. 총 6735억원의 사업비 중 이미 551억원이 투입된 한강예술섬사업은 유보됐고, 1757억원이 소요되는 서해뱃길사업도 예산을 배정받지 못했다. 동부간선도로지하화사업(1조3300억원), 강변북로의 성산대교-반포대교 구간 확장사업(9880억원) 등도 보류됐다.

그 대신 공공임대주택과 장기임대안심주택의 공급 및 저소득층 지원 확대,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시행 등을 위한 예산은 대폭 늘렸다. 그렇게 해서 복지 분야는 금년보다 6045억원이 늘어난 5조1000억원으로 전체 예산 21조8000억원 중 26%를 차지하고 있다.

기자는 오 전 시장 때 여러 차례에 걸쳐 남산이나 여의도 공원 등에 필요 이상의 치장을 하는 등 예산 낭비 사례를 들어가며 규모 있는 시 살림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런 맥락에서 박 시장이 전시성 토건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일단 환영하는 입장이다.

명품도시도 만들어야

그러나 박 시장이 내놓은 내년도 예산안을 대하면서 이번에는 또 다른 염려가 생기니 걱정도 팔자라는 속담이 헛말이 아닌가 보다. 우선, 박 시장이 전임 시장과 시정을 차별화하는 과정에서 되레 예산을 낭비하는 일은 없을까 하는 점이다. 예컨대 이미 착공한 사업을 중단함으로써 들어간 돈(sunk cost)을 공중에 날리는 경우다. 물론 본전 생각나서 자꾸 투자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될 수도 있겠으나 하던 사업을 중단할 때엔 기왕에 들어간 돈의 가치 등도 고려에 넣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전시성 토건사업에 들어갈 돈을 서민을 위한 복지사업에 쓰는 것에 딱히 반대할 상황은 아니다. 시대 흐름이 그렇고 시민이 그걸 공약한 박 후보를 시장으로 뽑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러다가 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여 보다 질 높은 생활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인프라 구축이 전적으로 외면당할 우려도 없지 않다. 예컨대 동부간선도로와 강변북로 관련 사업 등이 전시성 토건사업인지 아니면 꼭 필요한 인프라 구축 사업인지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당장 먹고 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서울쯤 되는 국제도시라면 세계에 자랑할 만큼 예술성 있는 건축물 같은 것도 필요하다. 시민들의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위해서도 그렇고 몰려드는 관광객과 후손들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저소득층의 기본적인 생활 문제부터 해결해야겠지만 보통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도시, 외국인도 와보고 싶은 명품도시로 업그레이드하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전화를 받으면 왜 기자실에 앉아 있느냐고 꾸지람하고 전화를 안 받으면 어디 박혀 있었느냐고 호통치던 옛적 데스크처럼 이러면 이런다고, 저러면 저런다고 타박하는 기자가 된 모양새다.

wjba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