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승욱] 재산보유 민주주의
입력 2011-11-13 17:59
“1%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점령’ 시위대는 미국 상위 1%가 부의 50%를 보유하고 있고, 매년 발생하는 연간 소득의 36.5%를 가져간다고 주장한다. 지난 30년간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줄어든 반면 상위 1%의 소득은 181%, 특히 상위 0.1%의 소득은 무려 497%가 증가했다고도 한다. ‘포브스’ 조사에 의하면 상위 400위 부자들의 총 재산 규모는 캐나다의 국내총생산(GDP)과 비슷하며, 경기침체에도 연 12% 정도 증가했다. 한국의 경우 상위 1%가 전체 가계자산의 15%를 상회하는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빈부격차가 적은 편이지만 세대 간 빈부갈등이라는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게임의 룰이 공정하면 자수성가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러면 부자가 존경받아 빈부격차로 인한 불만도 극복된다고 생각했다. ‘포브스’ 발표에서 미국 400대 부자 중 자수성가형이 1997년 55%에서 올해 70%로 크게 증가했다. 사실 미국의 경우 부자는 현명한(smart) 사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빈부격차를 용인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가장 자유로운 미국에서도 역사적으로 보면 빈부격차가 어느 한계를 지나면 폭발했다. 19세기 말 불황으로 농토를 빼앗긴 농민들이 폭발했다. 대공황기인 1932년에 디트로이트 포드자동차 해고근로자들의 데모로 5명이 죽었다. 67년에는 경제적 차별에 분노한 흑인폭동으로 43명이 사망하고 집 3000채가 불에 탔다. 지금 월가에서 시작된 ‘점령’ 시위는 온건한 편이다.
대공황이 가장 극심했던 1933년 취임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체주의를 선택한 나라들과 달리 뉴딜정책을 실시했는데, 여기에는 주택 정책도 포함돼 있었다. 내집 마련을 돕기 위해 주택시장을 부양했다. 또 정부가 주택마련 예금을 보호해 주고, 연방주택청을 설립해 낮은 이자로 20∼30년의 장기로 모기지대출을 해주었다. 이를 전역에 확대하기 위해 연방주택조합인 패니 메이도 창설했다.
67년 흑인 폭동도 비슷하게 해결했다. 흑인들도 모기지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직업도, 소득도 없는 비우량 등급자들까지 모기지대출을 허용하고, ‘지역 재투자법’을 만들어 은행에 이를 독려했다. 그래서 미국 주민의 약 70%가 주택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정부가 제공하는 안정성과 싼 이자로 소득수준 이상의 주택서비스를 향유하게 된 저소득층은 빈부격차를 수용했다. 이러한 재산보유 민주주의를 영국의 대처 수상도 수용했다. 80년대 영국 정부는 재산소유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것을 핵심 과제로 삼았다.
그러나 공산주의와 복지국가 대안처럼 재산보유 민주주의도 문제점이 있었다. 정부가 무한히 싼 이자 혜택을 줄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낮은 이자 때문에 물가가 상승해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지자 정부는 금리를 인상했다. 그러자 이자를 갚을 수 없게 된 저소득층에서 모기지대출에 대한 이자를 지불할 수 없게 되고, 결국은 세계경제까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불황은 실업자를 양산했다. 반면에 재산소유 민주주의 정책에 편승해 막대한 재산증식을 한 금융부자들은 급격한 경기변동을 이용해 더욱 재산을 늘렸다. 여기에 분노가 폭발했다.
인간의 부족한 지혜로 완벽한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다. 보다 바람직한 제도 개선도 계속 해야 하지만 이를 통해 완전히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는 환상도 버려야 한다. 사랑에 기초한 자발적 나눔과 같은 개개인의 적극적 참여 없이는 불만을 없앨 수 없다. 부자들이 흘러넘치는 것을 가지고 사랑으로 이웃과 나눌 때 불만과 미움과 증오가 사라지고, 감사와 축복이 넘치는 사회가 된다.
김승욱 중앙대 교수 경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