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학자 백소영이 만난 사람]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 박만희 구세군 사령관
입력 2011-11-13 17:40
겨울의 문턱이다. 한창 예쁘던 단풍도 낙엽이 되어 땅에 뒹굴며 한 해를 마무리하라, 그리 말을 건넨다. 거리는 곧 연말과 성탄을 알리는 들뜬 분위기로 가득 차겠지? 12월의 풍경을 떠올리다 보니 머릿속에 익숙한 그림이 그려진다. 빨간 자선냄비, 그리고 그 옆을 지키며 땡그렁 땡그렁 종을 울리는 군복 차림의 사관들. 우리나라에선 1928년부터 시작되었다 하니 참으로 오래된 연말 풍경이다. 계절의 분위기와 숙제를 마음에 가득 담고 충정로에 있는 구세군빌딩으로 향했다. 박만희 사령관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치매 어머니 모실때 깨달음… “약자들 진정한 손발이 돼라”
구세군은 시작부터 그랬다. 1865년 영국 런던은 근대도시의 명암을 그대로 가진 공간이었다. 전통적 삶의 기반을 잃은 실직자, 노숙인, 홍등가의 여인들이 늘어갔다. 그 시절 거리에서, 술집에서, 다리 밑에서 이 땅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긴박한 생존의 문제를 함께 껴안으며 시작한 것이 구세군이다.
박만희 사령관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구세군 정신이 참으로 매력적이었다고 전한다. 하여 장로교인 모태신앙으로 자란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낯설었던 구세군 사관이 되기로 결심했다. 박 사령관의 부모님은 청주에서 30분 떨어진 시골마을 사랑방에 금관교회를 세운 창립멤버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이었다. 제사 대신 추도예배를 드리던 기독교적 분위기에서 태어나 주일학교를 다녔고 교사도 했다. 그런데 군대 가기 전 유니폼을 입은 친구의 권유로 처음 들어본 청주 구세군교회를 방문하면서 그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다녀보니 구세군의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부부가 함께 사역을 한다는 점이었죠. 교회생활을 오래 하는 동안 목사님만 신학교육을 받고 사모님은 보조자의 역할을 하여 생기는 어려움을 보았거든요. 그런데 부부가 함께 신학교에 다니고 임관(안수) 후 동등한 사관으로 사역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아름답더군요.”
여성신학자의 귀에는 은총 같은 이야기였다. 60대의 대한민국 남자가 아내와의 동등한 사역을 ‘아름답다’ 말한다. 박 사령관은 그의 소망대로 결혼식 17일 뒤에 아내와 함께 사관학교에 입관했다. 동역자로서 아내와 함께한 세월도 감사한 일인데 하나님께서는 더 큰 감격을 선물로 주셨다. 3남매 중 두 아이가 부모의 뒤를 이어 사관 임관을 받은 것이다. 더구나 두 아이 다 박 사령관이 임직을 맡고 있던 당시여서 직접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할 수 있었다. 아비로서도 목회자로서도 감사함이 컸다.
신앙으로 세워진 복된 가정은 박 사령관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랬기에 10년간 지속된 어머니의 치매는 박 사령관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에게 버거운 고난이었다. 서로가 상처를 입히고 많이도 울던 시간들이었기에 일생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돌이켜보니 커다란 깨달음을 주시기 위한 연단이었지 싶다.
“모신다는 것 말입니다. 그저 같이 살면서 아이들도 봐 주시고 집안 일 이것저것 도와주시는 동안은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머니께 도움을 받는 것이죠. 식사수발도 해야 하고 대소변도 받아야 하는 것, 그러니까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시는 상태의 어머니에게 손이 되고 발이 되어 드리는 것, 그것이 ‘모시는 것’이더라구요.”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어쩌면 그 시간 동안에 박 사령관이 배운 것은 바로 구세군의 정신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 구세군의 구호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것 말이다.
한국 땅에서 구세군이 선교사역을 시작한 것이 1908년이라 하니 벌써 100년이 넘었는데, 전체 교인 수는 10만명 내외란다. 작고 작은 교단이다. 그러나 작은 것이 무에 문제이랴. 교회다운 교회, 신자다운 신자이면 되는 것을. 무엇보다 구세군은 지역교회 숫자보다 사회복지 시설이 더 많다. 에클레시아! 교회를 뜻하는 이 그리스어는 ‘밖으로 불리어 나온 사람들’이란 의미이다.
“교회가 예배당만 가지면 하나님과의 관계만 가능하겠지요.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 아니겠습니까?” 그의 말처럼 교회는 세상 안으로 자꾸 흩어져야 한다. 지역에서 더불어 살고 섬기며 살아야 한다. 작고 작은 교단 구세군이 160여개 복지법인을 통하여 아동, 노인, 노숙인, 미혼모, 다문화가족,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사역에 활발한 것이 그 증거다. 지역과 복지시설의 수, 돕는 인원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설명하는 박 사령관의 기억력에 놀라다가 듣게 된 ‘두리홈’의 이야기는 나의 심장에 콱 박혀버렸다.
철없는 실수만 책망하고 정죄했지 정작 어린 미혼모들의 출산을 돕고 있는 교회가 얼마나 될까? 어린 나이에 준비 없이 엄마가 되었지만 기특하게 입양 보내지 않고 스스로 키워내고자 결심한 청소년들에게는 ‘디딤돌’이 되어주며 엄마와 아이가 독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단다. 노숙인을 위한 ‘사랑방’ 사업도 그렇다. 일단은 쉼터를 제공하지만 일하고 저축하여 자립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직업훈련원 운영이나 학자금 마련을 위한 후원금저축 시스템 등도 결국 도움이 감정적 일회성의 자선이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사회, 하여 느리고 약하면 처지고 배제되는 이 현실 속에서 살아갈 용기를 잃고 좌절하는 사회적 약자를 찾아가 희망이 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 그 이름이 진정한 교회 아니겠나?
올 겨울에도 구세군의 빨간 냄비는 여지없이 거리의 익숙한 풍경으로 등장할 터이다. 그 차가운 솥이 사랑으로 끓어오르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기대해본다.
박만희 사령관
1947년 충북 청주 출생. 75년 구세군사관학교졸업(제49기 ‘십자가의 군병’ 학기). 전라·충청지방장관, 구세군성민수련원장, 서기장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부회장 등 역임. 현 남북평화재단 이사, (재)대한구세군유지재단법인·학교법인구세군학원·사회복지법인구세군복지재단 이사장, 나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구세군대한본영 제23대 사령관.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