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93) 경북 안동의 조선시대 고택들

입력 2011-11-13 17:45


양반 고을인 경북 안동에는 조선시대 고택(古宅)이 즐비합니다. 이 가운데 임하면 천전리에 있는 귀봉종택(龜峰宗宅)과 도산면 의촌리에 자리한 번남댁(樊南宅)이 최근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귀봉종택(중요민속문화재 제267호)은 의성김씨 귀봉 김수일의 종택으로, 1660년(현종 1년)에 최초로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종가랍니다.

귀봉 김수일(1528∼1583)은 퇴계 이황 문하에서 공부한 학자 출신으로 그가 이곳에서 살면서 집안을 크게 일으켰으며 그의 손자 때 새로 집을 지었답니다. 집의 구조는 ㅁ자형으로 대문채 사랑채 안채사당채가 있고, 사당에는 귀봉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을 벌인 운천 김용(1557∼1620)의 위패가 봉안돼 있습니다. 종택에는 ‘운천 호종일기’가 소장돼 있고요.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84호로 지정된 ‘운천 호종일기’는 김용이 임진왜란 때 의주로 몽진(蒙塵)한 선조를 수행하며 쓴 일기랍니다. 작성 기간은 1593년 8월부터 1594년 6월까지로, 피란 중에 체험하고 견문한 사실의 기록이지요. 이 일기는 당시의 생활상은 물론이고 정치 군사 외교 등 각 방면에 걸쳐 참고가 되는 값진 사료(史料)라는 점에서 의미가 높습니다.

귀봉종택 근처에는 의성김씨 종택(보물 제450호)이 있는데, 16세기에 불타 없어진 건물을 선조 때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김성일(1538∼1593)이 다시 지은 종가랍니다. ㅁ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가 행랑채와 기타 부속채로 연결돼 있는 것이 귀봉종택과 다르면서도 법식이나 기법에서 유사함을 보이고 있어 둘 다 국가지정문화재로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답니다.

번남댁(중요민속문화재 제268호)은 순조 때 삼척부사를 지낸 이휘부가 선친 이동순을 위해 건립하였고, 1875년 이휘부의 아들 이만윤이 직접 감리하여 중건한 집이랍니다. 번남은 이동순의 아호랍니다. 창덕궁을 모방해 지은 번남댁은 당초 99칸으로 영남 제일 규모를 자랑했으나 한국전쟁 등으로 일부가 소실되어 현재는 절반 정도인 50여칸만 남아 있답니다.

가옥은 ㅁ자형의 본채를 두었으며, 그 좌측에 ㄱ자형의 사랑채를 두었습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나오는데 마당 뒤에는 바깥행랑채에 비해 대지를 1m 정도 높여 사랑채와 본채를 배치한 것이 특징이랍니다. 3대 이상의 대가족이 거주할 수 있도록 배치와 평면이 복합적으로 구성돼 있는 조선 후기의 보기 드문 가옥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번남댁에는 ‘삼호당기(三乎堂記)’라는 글씨가 걸려 있습니다. ‘삼호’란 ‘논어’ 학이(學而) 편의 “남을 위해 일을 계획하되 불충하지 않았는가. 친구와 교제함에 신의를 잃은 바 없었는가. 전수받은 바를 익히지 않은 바 없는가”라는 구절에서 그 의미를 취한 것이랍니다. 언젠가 안동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옛 사람들의 흔적이 담긴 이 고택들을 꼭 둘러보시길!

문화생활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