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맹경환] 프라하의 헤르메스

입력 2011-11-11 17:35

헤르메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푸스 12신(神) 가운데 하나다. 제우스와 아틀라스의 딸 마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헤르메스는 가축의 증식을 관장해 부와 행운, 상업과 교역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도 헤르메스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무죄 결론이 났지만 2005년 삼성물산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됐던 영국계 펀드의 이름이 바로 헤르메스였다. 프랑스 마르세유 상공회의소 벽과 스위스 취리히의 UBS은행 입구 아치에도 헤르메스가 새겨져 있다. 여행의 신이기도 한 헤르메스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중앙역 지붕 위에도 조각돼 있다. 음악·문자·숫자·천문·체육·도량형·올리브 재배를 고안했다고 알려져 과학과 예술에 관련된 학술지에도 종종 이름으로 쓰인다.

체코 프라하 블타바 강변에도 헤르메스라는 이름의 배 한 척이 있다. 한때는 사람을 싣고 블타바강을 오르내렸겠지만 지금은 정박해 노숙인의 잠자리로 이용되고 있다. 2007년 프라하시가 폐선을 노숙인 쉼터로 만들었다. 1박에 1달러 안팎이라 부담이 없고, 간단한 식사와 진료 서비스도 제공한다고 한다. 여름에도 100명 이상이 꾸준히 찾고 겨울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가난한 배낭 여행객들의 하룻밤 숙소 역할도 한다.

자본주의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체코는 노숙인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프라하 기차역이나 공원 벤치에서 노숙인들은 흔한 광경이다. 프라하시에만 노숙인이 6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헤르메스가 문을 열기 전 프라하의 노숙인 쉼터는 600명 수용 규모밖에 안 됐다. 헤르메스의 최대 수용 인원도 250명밖에 안 된다. 그래서 관광객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노숙인들을 멀리 블타바 강변으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많다. 그래도 도심에서 무작정 쫓아내지 않고 부족하나마 쉴 곳을 마련해준 것에는 배려심이 느껴진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코레일이 서울역 노숙인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박 시장은 서울역 노숙인 야간 퇴거 조치를 재고해 달라 하고 코레일은 들어줄 수 없다고 한다. 애초 대안 없이 쫓아낸 것도 문제였지만 무작정 서울역으로 돌려보내려는 모습도 보기 좋지는 않다. 노숙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박원순표 대안을 기대해 본다.

맹경환 차장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