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사이 흔들리는 자아… 최정진 시인 첫 시집 ‘동경’
입력 2011-11-11 17:22
2007년 계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정진(31·사진) 시인의 첫 시집 ‘동경’(창비)엔 ‘너’와 ‘나’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자아가 등장한다. “발을 만지는 게 싫으면/ 그때 말하지 그랬어/ 외로워서 얼굴이 굳어가잖아/ 너의 집 앞에 다 왔어/ 창문을 열어봐/ 다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참을 만큼 의자를 참았다는 듯이”(‘첫 발의 강요’ 전문)
‘너’의 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을 포착한 시이다. ‘너’는 발을 만지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걸 말하지 않고 참는 동안 얼굴이 굳어간다. ‘너’의 마음을 알게 된 ‘나’는 오해를 풀기 위해 ‘너’의 창문 앞에서 서성거린다. 급기야 ‘너’의 집 앞에 다 왔을 때, 별안간 다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시인은 타인와의 관계에서 동요하는 감정에 이토록 충실하다.
“나는 너의 어디에 닿은 걸까 버스가 급정거한 순간 소리 위로 정교하게 쓰러질 듯// 너를 밀어버렸지만 쓰러진 건 너와 내가 아니었다 당겨지는 귀를 내 팔이 붙들고 있었다 내 팔은 방아쇠를 당겼는지도 모른다”(‘버스의 탄성’ 부분)
버스가 급정거한 순간, ‘나’는 ‘너’를 밀어버린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쓰러진 건 너와 내가 아니다. 문득 너를 잊은 채로 두고 온 것인지, 단지 튕겨나간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나’에게 세계는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어리둥절한 공간이다.
“방들이 집을 부술 듯이 차 있다/ 옥상은 이상하게 비어 있어/ 숫자와 맞서고 있다/ 십자가의 조명이 횟수로 나뉘려 하면/ 물어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런 생각조차 느껴지지 않게/ 너의 입으로 너의 이름을 부르며”(‘숫자를 찾아가는’ 전문)
집을 부술 듯 꽉 차있는 방들과 텅 빈 옥상의 기묘한 대조 앞에서 시인은 또다시 어리둥절하다. 그때 옥상에서 바라보이는 십자가들이 ‘나’가 찾아가려는 방 호수를 개관하고 있다는 듯 조명을 켠다. ‘나’는 또다시 어리둥절하다. 그 어리둥절함은 자아와 타자 사이의 틈새이자 존재와 존재 사이의 불일치이기도 하다. 최정진은 이런 일상 속에 숨은 엇박자를 놓치지 않는 예리한 눈을 가졌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