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주변인의 삶, 냉소적 시선에 담아내… 박석근 소설집 ‘남자를 빌려드립니다’

입력 2011-11-11 17:22


소설가 박석근(49·사진)의 7개 단편을 모은 첫 번째 소설집 ‘남자를 빌려 드립니다’(민음사)는 도시 속 경쟁에서 자꾸만 주변으로 밀려나는 군상의 다양한 풍경을 냉소적으로 그리고 있다.

표제작은 대역 일을 하는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자본주의의 일상과 인간성 상실의 상황을 들여다본다. 주인공은 증권사에서 고객 돈으로 몰래 투자하다가 손실을 본 뒤 감옥살이를 하고 이혼까지 당하는 등 순식간에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이다. PC방에서 바둑을 두다가 호출을 받으면 결혼식 하객, 가짜 환자 노릇, 남편에게 폭행당하는 여자의 앙갚음 대상 등 각종 대역을 하며 삶을 꾸려간다.

“24시간 불가마 종업원이 나를 알아본다. 그는 내가 하이에나라는 사실을 어쩌면 알지도 모른다. 나는 옷을 입은 채 휴게실 안락의자에 앉아 텔레비전을 본다. 지구촌에는 오늘도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났다. (중략) 나는 샤워와 입욕을 생략하고 숙면실로 향한다.”(43쪽)

어느 날 까다로운 여자 고객의 대역 남편 일을 맡은 ‘나’는 어느덧 진짜 남편처럼 저녁 식사 후 느긋하게 와인까지 곁들이는 사이가 된다. 그렇게 감정이 깊어지자 ‘나’는 사랑을 고백한다. 아내처럼 친절하게 굴던 고객은 돌변해 독설을 내뱉고 주인공은 소외감을 느끼면서 고객의 목을 조른다.

‘장군 의자’는 가상의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괴리를 다룬 작품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고가구 판매점 조 사장은 고가구나 골동품을 파는 행위를 ‘옛날 장인들의 정신을 파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중고 의자를 남북전쟁 당시 남군 총사령관이었던 리 장군의 의자라고 속여 팔려고 한다. 이 속임수를 정당화하는 그의 견해가 가관이다. “요새 사람들이 일상생활에 공허함과 무력감, 특히 소외감을 가지는 것은 한마디로 양식, 즉 스타일이 사라졌기 때문이야. (중략) 그 반작용으로 사람들은 양식에 대해 향수를 가지기 시작했지.”(216쪽)

소설집은 이처럼 대역 인생이라든지, 현실의 배후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미지의 허구를 폭로하면서 이미지와 실재, 허구와 현실의 관계를 탐구한 성찰과 실험의 기록이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