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 시대 불꽃튀던 哲人들의 사상사 재조명… 인문학자 강신주의 ‘철학의 시대’

입력 2011-11-11 17:24


아테네 민주주의의 쇠퇴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낳고, 스페인과 프랑스에 번갈아 침략당하던 이탈리아가 마키아벨리를 낳았듯 난세는 사상가들의 자궁일지 모른다. 역사상 가장 찬란한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시대 역시 500년에 걸친 전쟁과 약육강식, 고통으로 점철된 춘추전국시대가 아니었던가. 유가와 묵가, 병가와 도가, 법가, 음양가…. 이른바 제자백가는 수천 년 동안 이어진 동양의 정치사상과 역사를 결정짓는 역할을 했다.

인문학자 강신주(사진)의 ‘철학의 시대’는 제자백가의 사상 자체보다 제자백가를 낳은 시대를 통찰하는 역사서에 가깝다. 후일 유가가 다른 학파들을 물리치고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군림하게 된 배경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다. 한 제국 초기에 쓰인 ‘회남자’가 명확히 도가 중심으로 제자백가를 이해했다면 사마천의 ‘사기’는 유가와 도가 중 어느 쪽을 중심으로 놓을 것인지를 두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에 비해 유가 우위의 사상사적 관점을 확립했던 것은 서기 90년경 쓰인 반고의 ‘한서’에 와서라는 것이다. 살아 생전 별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했던 공자의 유가는 춘추시대 지배적인 정치 패러다임으로 작용했다가 주실(周室)이 망한 전국시대엔 내팽개쳐졌고, 한 왕조 수립 후에야 군주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 필요했다는 얘기다.

그러니 정치투쟁은 사상 투쟁이기도 했다. ‘사기’의 ‘노자한비열전’ 편은 “세상에 노자를 배우는 사람은 유학을 배격하고 유학 역시 노자를 배격한다. 도가 다르면 서로 모의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적고 있다. 한 제국 초기에는 황제와 공신·제후세력이 권력을 나눈 지방분권 시대가 한동안 이어졌다. 이는 도가에서 말한 ‘무위의 치’와도 부합했다. 권력을 회수해 강력한 중앙집권을 완성하려는 황제의 뜻에 일치했던 것은 유학자 동중서가 올린 상소 ‘천인삼책(天人三策)’이다. 동중서는 “법이 나오자 간사함이 생기고 명령이 내려지자 거짓이 일어나는 것이…심하면 심할수록 망하는 것은 심해집니다”라고 말했다. 수백 년에 걸친 격렬한 사상 투쟁에서 거둔 유가의 승리는 곧 정치에서의 승리였던 것이다. 정작 공자는 군주와 경대부·사(士)가 권력을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었다.

2권에서는 소위 제자백가 중 핵심 인물로 공자와 함께 관중이 다뤄진다. 유가들이 학파로서의 자의식을 갖고 있었다면 관중·상앙·이사 등 법가들은 정치인이었다. 사상과 학문, 정치와 군사가 얽히고 설켜 이루는 건 역사라는 이름의 커다란 물줄기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