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영화 구조 ‘캐릭터’… 재벌 2세와 사랑- 고단한 작가의 삶 넘나들며 ‘불통’ 그려
입력 2011-11-10 17:38
다양한 형식의 단편영화를 연출했던 여성 감독 손광주(41)의 장편 데뷔작 ‘캐릭터’는 일반적인 영화문법을 뛰어넘는 실험적인 영화다. 로테르담·전주·뉴호라이즌·예테보리 영화제 등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작품은 영화 제작 과정에 따른 고민을 캐릭터 세계와 현실 세계라는 2개의 이야기 구조를 통해 기묘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영화의 캐릭터와 서사의 틀을 만들어가는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의 대화로 시작된다. 부드럽고 잘 생기기까지 한 재벌 2세가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난하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대생과 사랑에 빠지다 헤어지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캐릭터에 상투적인 스토리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이색적이다.
황량한 벌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조그마한 폐창고의 문에서 감독과 작가의 대화에 오른 주·조연 및 단역 캐릭터들이 차례로 모습을 내밀고,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소화해낸다. 폐창고 안에서 홀로 깨어난 여대생이 전화를 받는 순간 영화는 그 캐릭터를 만들어낸 시나리오 작가의 현실로 넘어간다. 서른을 앞둔 작가 이수연은 세 작품 연속 500만 관객을 넘긴 젊은 감독 모재원의 차기작에 참여하고 있지만 감독과 갈등을 빚는다.
모 감독은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평단의 평가는 좋지 않은 데 따른 열등감에 사로잡힌 인물. 작품성까지 인정받고자 칸국제영화제 진출을 노리고 신춘문예 당선자 출신인 수연을 끌어들였지만 정작 시나리오가 밋밋하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수연은 하루 외출을 허락받고 합숙 장소를 빠져나오고,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병원에 누워 있는 아버지와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고교생 남동생, 시간강사인 남자친구를 만난다.
영화 속 2개의 이야기는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전반부 캐릭터들의 세계는 과장되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전개되지만 후반부 작가의 주변 이야기는 느리고 건조하다. 영화와 현실에는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듯하다. 클로즈업된 여자의 떨리는 손과 남녀 주인공의 독백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벨과 쇠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 등 상징적인 장치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전화를 통해 여대생과 작가 수연의 세계가 연결되는 설정은 인상적이다.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에서 폭력배로 전락하는 영재 역으로 깊은 인상을 준 이환(30)이 재벌 2세 남자와 모재원 감독 등 1인 2역을 연기했다. 음악영화 ‘플레이’(2011)로 영화에 첫 발을 내디딘 모델 출신 배우 김수현(26)도 재벌 2세와 사랑에 빠진 여대생과 시나리오 작가 등 1인 2역으로 독특한 매력을 선보인다. 오는 17일 개봉되며 등급은 미정.
라동철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