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의 野口] 우리가 ‘끝판대장’
입력 2011-11-10 18:10
올해 프로야구가 끝났다. 상하위권이 골고루 재미있었다. 600만 관중이 들었다니 흥행도 대박이었다. 막판에 포스트시즌 가을야구를 즐긴 팬들과 우승한 라이온즈 팬들에게는 아련한 부러움까지 느꼈다. 비록 내가 응원하는 팀이 잔치에 초대받진 못했지만 프로리그답게 후끈한 야구 열기에 야구광으로서 올 겨울 난방비 걱정을 잊을 정도였다.
이렇게 시즌이 덜컥 끝나자 문득 야구장에 자주 가지 못했다는 게 아쉬웠다. 올해 수입으로는 내게 야구가 좀 사치였다. 입장료와 맥주·치킨값, 차비를 합쳐, 대략 삼만 원 정도 드는데 내가 고소득 전문직 같은 것 안 하고 저소득층 작가로 사는 이상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그래서 시즌 중 취업을 결심했었다. 야구장 갈 수 있는데 안 가는 것과 돈 없어서 못 가는 건 기분이 다른 데다 다른 600만 명의 팬들처럼 야구 보러 가서 응원하고 야구를 즐기는 최소한의 여유를 갖고 싶었다. 그 결과 스포츠 정신으로 도전한 끝에 취업되었고 열심히 노동해 첫 월급을 탔다. 그런데 이런, 야구가 끝났다. 너무 늦은 거다. 칼 퇴근하고 지갑에 돈이 있어도 가서 볼 야구가 없다는 사실에 허탈한 웃음이 났다. 스포츠 정신을 동원해야 할 만큼 취업난 참 죽여주더라는 현실에는 할 말이 없었고.
해마다 야구가 끝나면 겨울이 온다. 신년 달력이 돌기 시작하며 한해가 끝나가는 기분이 호러 장르처럼 섬뜩하고 소스라치게 도래해 온다. 서민들은 묵직한 가계부채에, 막막한 청년 실업에, 대책 없는 전월세 대란에, 울며 겨자 먹는 교육비에, 생필품을 사는 건지 사치품을 사는 건지 알쏭달쏭한 물가에, 추위까지 겹치니까 여기저기에서 신음소리로 랩을 하고 있으며 울고 짜는 소리가 저절로 코러스를 넣는다. 마치 배트도 글러브도, 운동장도 없고 심지어 치어리더도 없이 9회말 마지막 수비를 하는 것 같은 심정이다. 서민을 좀 더 이해할 것 같은 후보가 서울시장 구원 투수를 뽑는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것도 이런 세태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준 ‘끝판대장’ 오승환 선수에게 나는 좀 감동했다. 막강한 구위에 무력한 현실감을 잊을 정도였다. 그가 구사하는 자신감 넘치는 돌직구는 시원시원하게 어떤 어려움이든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해법으로 보였다. 사실 이렇게 살기 힘들고 대단히 각박한 서민들의 현실도 오승환의 구위에 비하면 전혀 압도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의 공은 지금의 야박한 한계와 현실을 멋지게 극복해 내는 일말의 방법 같아 보였다. 나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꿋꿋이 그 막중한 빅 매치의 마운드에서 버티고 있는 오승환을 보며 무릎을 탁 쳤다. 나도 올해의 마무리를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았다. 어려워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덤덤하면서 당당하게 승부하며 살아나가면 멋질 것 같았다. 야구 시즌이 끝난 허전함에 만용 부리는 게 아니라 그런 훌륭한 스포츠 멘탈과 같은 마무리 정신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아마도 자신감으로 승부하면 대개의 일에 무시 못 할 공끝을 보여줄 수 있을 테다. 자, 어쨌든 모두 파이팅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