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경제雜說] 갈라파고스 거북으로 살 것인가

입력 2011-11-10 18:11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위치한 갈라파고스 제도는 모두 19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1000km나 떨어져 있는 이 섬들이 유명해진 것은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부터다. 1835년 영국 해군의 측량선 비글호의 의무요원으로 갈라파고스 제도를 밟은 다윈은, 원래는 같은 종이었을 동식물들이 섬마다 다른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진화론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적자생존설’을 확립한다. 주어진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생물만이 살아남아 진화한다는 이론이다.

진화론에 대한 논란은 오늘날에도 일부 있지만 그 당시 이 이론에 대한 일반인들의 비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중 유명한 이야기가 바로 “동물원의 원숭이는 언제 사람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다윈이 “언제일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당신보다는 먼저 사람이 될 것”이라고 대꾸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다윈을 더 당혹하게 만들었던 것은 진화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찬성하는 사람들이었다. 진화론을 잘못 받아들인 일부 지식인들은 부자는 풍족하고 빈자는 가난한 이유를 적자생존설에서 찾았고, 따라서 사회적 불평등이나 나아가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략을 자연의 선택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여러 섬들이 처음부터 고립돼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제도의 여러 섬은 원래 육지로 이어져 있었거나, 바다라 해도 물이 깊지 않아 동물들이 쉽게 오갈 수 있었다. 바람은 식물의 씨앗들을 이 섬에서 저 섬으로 번식시켰다. 그러나 점점 수위가 높아진 바닷물은 동식물의 왕래를 막았고,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 동식물들은 섬들마다 서로 다른 형태로 진화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녀가고 그들이 타고 온 운송수단들을 통해 외래종이 들어오게 되자, 오랫동안 한 가지 환경에만 적응하면서 살아왔던 갈라파고스 제도의 생물들은 점점 외래종과의 경쟁에 쫓기게 됐다. 다윈을 감탄시켰던 갈라파고스 땅거북―갈라파고스는 에스파냐어로 거북이라는 뜻이다―을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이구아나며 다윈 핀치 같은 생물들이 지금은 거의 다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사람들에 의한 남획도 이들 생물이 멸종 위기에 처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너무 오랫동안 한 가지 환경에만 순응해 살다보니 달라진 환경과 변화에 적응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동식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유럽인들의 침략 이후 50여년만에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수는 10분의 1 이하로 줄었다. 그들의 주요 사망 원인 가운데 하나가 감기였다. 유럽인들이 옮겨 온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병균들에도 원주민들은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저항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갈라파고스 제도의 거북이들과 마찬가지로 남아메리카의 원주민들 역시 유럽인들의 침략이 없었다면 조금 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것이 가능했을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다윈이 살던 시절 남아메리카와 태평양을 탐험한 유럽인들은 여러 곳에서 원시 상태 그대로 사는 미개 부족들을 만났다. 어째서 한쪽에서는 증기선을 타고 세계를 일주할 만한 과학문명이 발전할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돌도끼와 흙그릇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 다른 세계, 다른 문명으로부터 고립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문명과의 교류가 없었다면, 지금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일지 모르는 일이다.

얼마 전 TV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프로그램 가운데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게 있었다. 아마존의 밀림 속에서 지금도 원시생활을 영위하는 부족의 이야기다. 많은 시청자들이 그 방송을 보면서 원시 부족의 순수함에 감동하였고, 자꾸만 그들의 생활 터전을 침범해 오는 문명인들의 이기심에 분노하였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아마존 원시부족의 생활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논란거리 중 하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급기야 며칠 전에는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끼리 멱살잡이를 벌이는 추태까지 일어났다. 합의 내용 가운데 이런저런 문제점이 많다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지적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런 내용들에 대해서는 가능한 데까지 국론을 모아 조정하고 수정해야 옳겠다.

다만 걱정되는 일은 가끔 FTA를 반대하는 주장들 가운데는 개방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경우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갈라파고스의 거북이나 아마존의 조엘족처럼 말이다. 개방 자체를 반대하는 분들의 주장처럼 만약 세계와의 교류와 협력을 거부하고 오직 우리 식대로만 살고자 한다면, 이제 우리 모두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 쑥과 마늘만 먹으면서 살 것인가? 당연히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외국의 상품을 사지 않으면서 우리 물건만 팔겠다고 우겨대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다. 그러니 이런 기회에 개방과 협력을 확대하고 자유무역을 통해 세계 인류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